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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따스한 리더십을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 입력 2024.03.27 14:46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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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페이션스'를 기르는 교육이기를

 철조망에 핀 나팔꽃 한 송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철조망에 핀 나팔꽃 한 송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인간은 누구라도 '일회성'과 '유일성'안에서 살고 있다고 죽음의 수용소를 체험한 빅터 E.프랑클은 말합니다. '일회성'이란 그 사람의 인생이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유일성'이란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았기에 그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보다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더 나아가 "고민하는 인간은 도움이 되는 인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일회성이기 때문에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존재 이유와 목적, 그 끝을 고민합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우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인의 우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광활한 대우주 속에서 잠깐 스치듯 살다가는 미약한 내 존재를 느끼는 순간 우울하지 않은 사람,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그 원초적인 질문, 자아나 자의식을 넘어 고민이나 고뇌의 순간에 아슬아슬한 갈림길에서 '종교인'이 되거나 '예술가'가가 되거나 어느 한쪽으로 갈린다고 합니다. 종교형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지옥 같은 고민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술가형은 절대적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승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지금 우리 사회는 심리적 혼란에 싸인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시대의 모든 고민이 이즈음에 와서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그러나 조금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보면 지금과 같은 사회 현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고 멀지 않은 조선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다만 정보의 그물망이 촘촘하지 못해서 알려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현대인의 유전자가 과거보다 더 나빠졌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성경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보편적인 가치가 시대를 막론하고 펼쳐졌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계속 발명되어도 인간 그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한 듯 보입니다. 다만 노력할 뿐.

베버는 자본주의 문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최후의 인간형에 대해,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을 지목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류의 문명은 진보하였으나 정신문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납니다. 그것은 역사 발전의 단계에서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밀려갔던 파도가 되돌아오듯, 다시 반복된다는 경고로 들려서 섬뜩합니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전문직이나 고위층의 범죄 행위를 보면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의 전형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어떻게 살까'라는 윤리보다 '무엇이 될까'에 더 치중해 온 결과로 보입니다. 우리 교육의 고민이 거기서 비롯되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입해 온 무서운 결과를 되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방향 전환이 급함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든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는 비도덕적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개처럼 벌면 개처럼 쓸 수밖에 없고 모로 가면 서울 길이 아니라 목적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칠 때입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자존감, 염치를 아는 인간으로 '어떻게'를 중시하는 교육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어야 합니다. 거의 모든 학교 교육의 목표는 인성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결과물은 인성 교육의 부실을 감출 수 없는 현실을 되돌아 볼 때입니다.

새로 들어선 정부에서는 어느 분야보다 교육에 힘을 실어줄 것을 간절히 바랐습니다만 정체성이 불분명한 지도자였기에 그 희망은 절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라져 버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학교 교육의 본질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하는 정부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희망의 싹은 교육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논리에 밀려 교육의 위상이 더 이상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처참하게 무너진 2023년 서이초 교사의 죽음이 변곡점이 되기를 빕니다. 2024년에는 진정으로 우리 학생들을 아끼고 보듬는 정책과 비전으로 가슴으로 다가가고 고민하는 교육이 펼쳐지길 갈망합니다. 어느 순간 총선에서조차 사라져버린 교육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힘든 현실 속에서도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을 기르지 않는 학교 현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혜롭고 따스한 리더십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관리자와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희망을 향해 나가면서도 절망의 그늘을 더 챙기고 다독여주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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