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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배고픈 아이

선생님의 껌딱지

  • 입력 2023.11.23 09:16
  • 수정 2023.11.24 10:21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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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으로 남은 그해 가을 / 구례토지연곡분교장 뒷산의 가을 풍경

어디로 튈지 모르던 아이

"선생님, 00이가 내 귀에 대고 소리 질러요!"

"선생님, 00이가 화장실에서 떠들어요!"

"선생님, 00이가 아줌마라고 놀려요!"

하루 중 친구들 잎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던 아이.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다문화가정 학생이지만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지적인 능력도 우수했던 아이. 발음도 정확하게 똑똑했게 책도 잘 읽었다. 수리능력도 우수하고 일반적인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처럼 우리말 표현 능력도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여 푸는 문제나 수학의 스토리텔링 문제에는 약했지만. 깊이 생각하기 싫어할 정도로 덜렁대고 차분하지 못한 태도 탓이라고 생각했다. 받아쓰기를 시켜 보면 아는 문제도 쓰지 않고 놀고 있을 정도로 학습에는 무관심하지만, 발표를 하거나 활동적인 게임을 시켜 보면 매우 적극적으로 좋아했다.

나의 하루는 00이의 산만한 모습을 다 잡아 주는 일로 시작했다, 연필이건 필통이건 숙제건 뭐든 한 두 가지쯤은 가져 오지 않는 게 일상인 아이,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괴롭히는 일이 습관인 00이는 저의 오랜 교직 생활을 시험하듯 깐죽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그래도 담임인 나의 영향력이 미치는 교실 주변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교실 수업을 끝내고 들어가는 돌봄 교실이나 방과 후 학교 시간이 문제였다. 그 시간에는 여지없이 자신의 놀이터가 된 것처럼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돌아다닌다는 것.

그러다가 친구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서 학교폭력으로 번질 뻔한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양쪽 부모님이 이해를 하고 사과를 받아주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고 반성문을 쓰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사소한 장난에 그치던 아이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그 일을 계기로 좀 더 적극적으로 상담해보기로 했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그림으로 말하던 아이

먼저 그 아이가 그리는 그림을 분석해보았다. 사람을 그리면 비율이나 표현 방법이 우수함에도 거의 모든 그림에서 손이나 발을 그리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그림은 대부분 가정폭력이나 주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상처 받은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이나 선후배에게 장난을 먼저 거는 아이라서 학교에서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학부모 상담을 하기로 했다. 00이에게 먼저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물어보았다.

"00아, 혹시 집에서 꾸중 듣는 일이 많니? 혹시 아빠나 엄마가 때리기도 하니? 선생님이 00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요."

"네, 아빠가 좀 때려요. "

"많이 혼낼 때는 어떻게 하시지?"

"매로 발바닥을 때려요. 어떤 때는 밖으로 쫓아내요. “

"그렇구나! 네가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서 그런 거지? 앞으로는 좀 잘해 보자. 선생님도 아빠가 조금 덜 혼내시도록 말씀을 드릴게. 앞으로도 힘들면 선생님께 말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00이가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이란다."

00이와 먼저 이야기를 한 뒤 아버지와 전화 상담을 했다.

"00이 아버님, 안녕하세요? 제가 몇 달 이상 지켜보고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래도 00이가 집에서 생활할 때 부모님한테 꾸중을 많이 듣는 것 같아서요. 우리 00이는 책도 잘 읽고 발표도 잘 합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손과 발을 그리지 않습니다. 이런 그림은 가정에서 꾸중을 많이 듣거나 매를 맞는 아이들에게 나타나거든요. 혹시 아버님께서 00이에게 좀 심하게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 선생님. 00이가 삼남매의 맏이인데 동생들을 잘 돌보지 않고 싸울 때 가끔 때렸습니다."

"그럼 심하게 혼낸 경우는 없으신가요?"

"아이 말로는 발가벗겨서 집 밖으로 쫓아내신다는데, 정말 그러셨나요?"

"그런 적도 있습니다."

"아이고, 그런 벌은 아이의 자존감에 엄청난 상처를 줍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받은 아픔을 동생들이나 학교의 친구들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00이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 화가 나시더라도 말로 알아듣게 타이르셔야 합니다. 그게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요.

그리고 꾸지람 하신 후에는 아이를 방치하지 마시고 반드시 사랑한다는 표현과 아낀다는 포옹도 같이 해주셔야 아이가 안심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대물림됩니다. 맞고 자란 아이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되돌려준답니다. 00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늘 건드리고 괴롭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00이를 야단치실 때는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고 말로 타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똑똑한 아이라서 말로 해도 잘 이해하거든요. "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앞으로는 노력을 많이 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가정폭력이 심한 경우에는 담임인 제에게 신고할 의무가 있답니다. 모두 다 잘 가르치고 잘 기르자는 취지에서 말씀 드린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날 이후로 종종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물어보곤 했다. 그전보다 덜한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00이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게 좋은지 더 밝아지고 그림도 좋아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따로 손과 발을 그리라고 안 해도 그려 넣게 되었다. 그전에는 내가 꼭 말을 해야 그렸던 손발이었으니까요.

자기만 봐 달라던 아이 – 선생님 곁에만 앉혀주면 순한 양

언제부턴가 00이는 내 껌딱지가 되었다. 늘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아무 때나 인사를 하곤 했다. 그것은 자기를 봐 달라는 신호였다. 학습지를 풀거나 수학 문제를 풀 때, 그림을 그릴 때도 내 옆에 있는 도움 책상에 와서 하기를 좋아했다. 친구들 속에 있을 땐 해찰하고 잔소리하며 속도를 내지 않고 시간만 끌던 모습이 많이 좋아졌다.

칭찬과 관심에 목마른 작은 영혼이 사랑해달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겨우 여덟 살인데 두 동생들을 돌보는 형과 오빠의 자리가 그동안 아이에겐 너무 무거웠다는 것을, 그 역할을 잘못할 때 날아온 질책과 내쫓김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아 친구들에게 투사하며 상처를 키우며 외로웠을 00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불러주었다. 우리 반의 아픈 손가락이 얼른 나을 수 있도록!

무서운 아빠도 우리말이 서툰 베트남 엄마도 어린 두 동생까지도 00이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걸 많이많이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아픔을 알아줄 때 견디어낸다고 한다. ‘내가 아끼던 껌딱지야, 멋진 청년이 되었겠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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