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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지켜라

교육은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는 일

  • 입력 2023.12.13 10:08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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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으로 남은 풍경 / 2005년 토지초연곡본교장에 눈이 내린 날
 그리움으로 남은 풍경 / 2005년 토지초연곡본교장에 눈이 내린 날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님의 「서시」

윤동주님의 서시가 그리운 시대다. 우리는 지금 부끄러움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물질의 노예가 되었고,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고, 외모지상주의에 빠졌다. 발보다 얼굴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를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욕구 충족을 위해서라면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성추행과 성폭행도 부끄럼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 연일 뉴스에 오른다.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뇌물과 불법을 저지르고 거액을 받고 변호하는 일이 보통인 세상이 되었다. 총체적 부정부패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뇌물사회를 차단하고자 만든 김영란법조차 무색해졌다. 영부인이 명품가방을 뇌물로 받는 장면이 온라인을 도배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양심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일은 당연한 진리다. 개인이건 국가건, 조직의 수장이건 평범한 서민이건 간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예의의 시작이다. 그것은 참된 인생으로 가는 길이며 당당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상의 공중도덕이 무너지고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들어줄 곳이 없는 사회는 두려운 사회다.

아무리 더워도 다른 사람 앞에서 맨발을 보여서는 안 되니 날마다 여름 양말을 신고 다니도록 지도했고, 도서관에서는 목소리나 발소리를 줄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것, 식사예절을 지키도록 지도하는 일을 비롯해 1학년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말과 행동으로 잔소리하기를 반복했었다.

공부는 나중에라도 잘 할 수 있지만 생활 습관이 잘못된 학생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부끄러움도 몰라서 참된 인생을 살기 어렵다고 날마다 강조했다.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 더 힘들게 살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할 사명이 교육에 있으므로!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가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위협하여 목숨까지 내놓게 하는 비정한 세상이 되었다. 자기 자식만 소중히 여기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나친 민원을 제기하여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서 누가, 어떤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충고를 하고 뜨거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까! 교직에도 복지부동이 또아리를 틀게 하는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이다. 존경과 신뢰가 기본이어야 할 교실에 녹음기를 들여보내는 학부모, 아무 때나 전화하여 폭언을 늘어놓는 현실. 급기야 교대생의 절반 정도가 다른 진로를 모색할 정도로 교단이 술렁이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생명인 교단의 선생님을 죽이는 기막힌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키워낸 원동력은 누가 뭐라 해도 교육자의 공이 크다. 연봉이 높지 않아도 우수한 인재가 교직을 선택하는 데에는 사람을 기르는 숭고한 직업에 대한 높은 보람과 자존감에 있었다. 학부모의 부당한 갈굼에도 그 학부모를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선생님이다.

오죽하면 학부모에게 민원을 받지 않으려면, 숙제 내주지 않기, 쉬는 시간 많이 주기, 말썽 부리는 학생 모른 척 하기 등 냉소적인 생활지도 방법으로 학부모 민원을 받지 않았다는 슬픈 내용이 온라인에 떠돈다. 살아남기 위해 가르침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는 교단이 보여준 한숨 나오는 모습이다. 문제가 생겨 힘들어도 관리자도 국가도 도움을 주기는커녕 참고 견디라는 판국이니 어쩌랴!

진정한 교육은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일, 그걸 깨닫고 실천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사람이 다른 동물과 변별되는 아름다운 가치다.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내공을 다지게 하는 선생님을 악성 민원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기 바쁘게 진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직위해제를 하고 담임 자격을 박탈하여 나락으로 내모는 나라에 희망은 없다. 저출생으로 나라의 미래까지 불투명한 절박한 상황에서 누가 열정으로 사랑으로 제자를 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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