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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총알이다

2024. 독서일기 3.《단어가 인격이다》

  • 입력 2024.01.05 14:59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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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곧 '나'다, 재미있는 단어 사전

단어가 인격이다/배상복/위즈덤하우스/14,000원
단어가 인격이다/배상복/위즈덤하우스/14,000원

조정래 작가는 인류의 3대 발명품은 '정치, 종교, 언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발명품이라 하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생각하기 쉬운데 작가는 범위를 넓게 본 듯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언어'라고 했다. 정치나 종교도 '언어'라는 매개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전제에서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문자를 발명하고 그 문자를 이용하여 기록물을 남기는 고등동물이다. 인류 진화의 초석은 바로 언어의 힘에 있다고 단언한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언어 사용을 잘하지 못해서 귀중한 생명을 버리게 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난무한다. 직장내 갑질이나 학교 폭력, 교사를 향한 언어폭력 등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들이 폭주하는 열차처럼 연일 보도된다.

E. 리스는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에서는 그 사람의 고유한 색깔이 느껴지고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그가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아름다운 색깔과 아름다운 향기가 배어나올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문자 메시지에서, SNS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어떠한 단어를 사용하십니까? 단어는 당신의 인격입니다  - 7쪽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제1장 당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차별적 단어, 제2장 상사가 차마 지적하지 못하는 직장생활 단어, 제3장 어원을 알면 낯이 뜨거워지는 단어, 제4장 문자 메시지나 SNS에서 주의해야 하는 단어, 제5장 상황에 따라 바꿔 써야 하는 단어, 제6장 알아둘수록 품격을 높이는 단어'로 구성되었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동물일까? 나는 그 말 때문에 아주 오래된 모임을 없앴다. 고생하던 시절에 만난 소중한 친구들이었기에 의기투합해서 만든 친목계였다. 세월이 흘러 반백이 다 되니 말을 함부로 하는 친구가 생겨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노년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었지만 만나고 올 때마다 화를 삭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몇 년을 고민하다 만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망설임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음이 편해졌다. 가지치기는 나무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관계도 과감한 가지치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유명 정치인이 끔찍한 테러를 당했다. 섬뜩한 일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건의 본질은 외면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가짜 뉴스까지 넘쳐난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추악한 형태로 온라인을 지배하는 거대 폭력이 되어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대한민국의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확대 재생산하며 물고 뜯는 야비한 기사가 넘친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살펴보면, 과연 인간의 언어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생명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마저 깡그리 뭉개는 말들이 난무한다. 이미 자정능력을 잃은 쓰레기 언어들은 법적 제재를 가하고 고소를 하겠다고 해도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국가적 손실이고 소모전이다.

말은 발화자의 거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척도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지표다. 말은 생각의 산물이며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윤대통령은 '이 **' 발언이나 '날리면' 발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언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자들을 압박하고 변명으로 일관한 점이다. 자신의 입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실수를 사과하는 행동조차 뭉개는 지도자를 보고 배우는 학생들이 뭐라 했을까? 어른의 위신이 서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 사람 만나는 걸 최대한 없애는 중이다. 침묵을 사랑하는 중이다. 거기다 남들은 다한다는 카톡이나 SNS조차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니 꼭 필요한 연락 외에는 휴대폰을 쓸 일도 드물다. 명절이나 스승의 날에 형식적으로 인사치레에 가까운 연락조차 정중히 거절하고 산다. 그야말로 조용하게 사는 중이다.

사람들을 만나 진심을 나누기 어렵다면 차라리 눈빛과 표정, 몸짓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우리 집 고양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따스한 감정을 얻곤 한다. 우리는 눈만 깜빡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서 녀석에게 상처를 받는 일은 없다.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며 좋아졌다는 사례는 참 많다. 그만큼 그들의 순수성과 진실은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법정 스님은 살아 계실 때 맑은 가난을 실천하시며 신문과 방송을 멀리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인세를 다 내주어 정작 자신의 병치레를 위한 돈이 없어 고생하셨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소리 없는 봉사와 나눔을 당연하게 여긴 선승이자 스승이었다. 요즘처럼 추악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법정 스님의 죽비가 그립다. 삶이 곧 말이었고 일자천금이었던 그분의 말씀이 그립다.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 밥을 먹으면서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니 행복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무말하지 않고 밥만 먹는다면 얼마나 어색할까. 말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니 서로 교감하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저녁 회식을 싫어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리라. 직장 상사나 동료를 사랑하지는 않을 테니 밥 먹는 자리가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뭘 먹어도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을 테니.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조상들의 격언은 한 권의 책을 능가하는 멋진 금언이다. 그러니 말의 무게를 재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할 일이다. 말하기 전에 그 말이 옳은 말인지(진실과 거짓을 가리고), 꼭 필요한 말인지, 그럼에도 지금 말을 해야 할 때인지 세 번의 관문을 거치라는 충고를 새길 일이다. 인품(人品)의 품자가 입 구자 세 개인 걸 보니 한자의 기막힌 상형문자가 놀랍다. 사람됨은 언어의 품격에 있음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러니 말같지 않은 말을 내뱉는 자는 사람 축에 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닌가!

말은 총알이다.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총알보다 더 위험하기도 하다세상의 절반은 할 말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할 말이 없어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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