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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

2023 독서일기 - 105.《다산의 제자 교육법》

  • 입력 2023.11.22 09:52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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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다산의 제자 교육법/정민/휴머니스트/15,000원
다산의 제자 교육법/정민/휴머니스트/15,000원

20대 중반, 3년 남짓 근무한 행정직 공무원 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좋아하는 직업이 아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선택한 길이었으니 당연했다. 일찍부터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엄격한 상명하복, 민원 업무에 시달렸다. 휴일 근무나 추가 근무를 밥 먹듯 했다. 추가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여름철 출근 시각은 관리자의 기분내키는 대로 아침 7시가 기본이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검정고시에 이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안도감 잠시, 업무 스트레스가 시달렸다. 특히 책임질 일이 많은 인감업무로 늘 불안에 떨었다. 그 당시에는 전자시스템이 아닌 수기업무였기 때문이다. 시골 면사무소라 장날만 되면 민원이 폭주했다. 장날만 되면 오후 3시경이 되어서야 겨우 점심을 먹을 만큼 바빴다.

다행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교직에 뜻이 있어 통신대학 초등교육과를 졸업한 덕분에 영혼 없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공무원 생활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으니 언제든 탈출할 생각이었다.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하고 신고서를 대필하는 기계적인 일에 지쳐갈 무렵, 순위고사를 치르고 한 달 뒤 초임학교에 부임했다.

교직을 선택하며 자존감을 회복했다. 공무원 생활 중에 교육학 공부를 하며 교직에 대한 사명감, 직업인을 넘어서는 천직이라는 소명의식으로 마음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주는 순수한 웃음과 가르친 만큼 다가오던 보람으로 행복했다. 가르침이 주는 선한 영향력과 자부심으로 내 젊은 날의 교실에는 추억이 많았다. 학생수는 40명에 가까웠지만 힘들다고 느끼지 못할만큼 행복했다.

그러나 사명감만으로 교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알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경우는 학부모나 제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 관리자와 관계된 문제여서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것도 교직에 입문한 지 3년 차 되던 때라서 내상이 깊었다. 수업이 아닌 행정업무와 경리업무로 자존감이 떨어져 가던 무렵, 다시 탈출을 꿈꿨다.

교내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관리자는 문제를 덮기에 바빴다. 투명하지 못한 학교 재정 문제를 너무 이른 나이에 알게 된 것은 교직생활에 대한 회의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관리자를 보는 눈이 존경이 아닌 시선일 때, 바르게 살기를 훈화하는 학교장의 위선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니 승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존경과 감동을 안겨주는 관리자를 만났더라면 바뀌었을까!

"재부란 본래부터 허깨비 같은 것이니라. 천년만년 가는 것이 아니다. 너는 어디에다 네 인생을 걸려느냐? 허깨비 같은 논밭 문서와 오래 못 갈 재물이냐, 인간이 걸어가야 할 떳떳한 도리이냐?

사람이 밥만 구하면 밥도 못 먹고, 밥 이상의 것을 구하면 밥은 저절로 오게 되는 것이니라. 자꾸 셈으로 따져 저울질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못 쓰게 된다." -31쪽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굶고 살 수는 없으니 원포 경영을 통해 기본적 생계의 문제를 해결해라. 그 방법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생계는 안 돌보고 공부만 하겠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그렇지만 생계를 위해 공부를 놓겠다는 것은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것과 같다. 너를 구원해줄 것은 오직 독서뿐이다.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 -147쪽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의 수준에 맞게 전한 가르침에 관한 책이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그 가르침을 멈추지 않은 위대한 스승의 면모를 보여준다. 재물에 마음을 두는 제자를 향해 단호한 가르침으로 죽비를 날리는 다산의 면모에서 참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내면서도 제자를 기른 그의 면모는 숙연함마저 안긴다.

지금 이 나라는 교육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공교육을 떠받치는 선생님들의 사명감과 사랑으로 교육활동을 하기 어려울 만큼 흔들리고 있으니 큰일이다. 악성 민원과 학생들의 반항 앞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미 교육대학에 진학한 예비 교사들까지 휴학이나 자퇴를 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마음을 다해 가르침의 보람을 얻고자 선택한 교직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무너진 자존감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소중하고 귀하다. 그럼에도 자라나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앎의 기쁨을 나누고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교직의 보람은 그 무엇에 비길까. 

의사의 평균 연봉이 변호사의 연봉보다 두 배나 높아서 너도나도 의대를 지망하는 걸까. 의사의 연봉은 노동자 평균 연봉의 7배라고 한다. 돈의 잣대가 직업을 선택하는 서글픈 시대에 연봉이 높지도 않고 존경 받기는커녕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내던지는 무서운 직장으로 변모된 교직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지고 먹먹해진다. 그럼에도 가르침의 순수한 열정과 책임감, 돈과 바꿀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훌륭한 선생님들이 대다수이니 다행이다.

날마다 배우고 사랑하며 제자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교직을 떠난 인생의 선배로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사람을 기르는 교직이 얼마나 보람되고 아름다운 천직이었는지, 그 길을 끝까지 완주한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자존감이라는 것을! 힘들어도 사람을 기르는 교직이 주는 선한 영향력을 믿으며 대한민국의 교실을 지키는 수많은 다산의 후예들에게 영광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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