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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 속으로

정신줄을 붙잡자

  • 입력 2021.11.08 08:53
  • 수정 2021.11.08 08:54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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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 하는 꽃처럼

우리 인간의 몸은 7년을 주기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세포의 재생과 탄생, 사멸을 비롯해 혈액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혁신을 거치며 생명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그런데 정신은 어떨까? 7년을 주기로 몸만큼 새로워지고 있을까? 아니면 7년 주기로 새롭게 태어나는 몸을 따라가기는커녕 반대로 퇴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정신의 퇴보를 막기 위한 몸부림으로 책을 읽고 신문을 펼치지만 지속하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무엇보다 돋보기가 없으면 읽을 수 없으니 그 불편함을 핑계삼곤 한다. 결정적인 이유는 퇴직이다. 수십 년 습관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던 아침독서 시간이 없어졌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가르침의 트랙 위에서 내려선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사흘이 멀다하고 꿈 속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토론을 하는 내 모습에 놀란다. 나의 무의식은 여전히 학교와 교실에 남겨진 것일까. 인생의 대부분을, 그것도 젊음을 다 보낸 교직이었으니 꿈 속에서도 수업을 하는 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책을 읽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으로 나를 몰고 다닌 시간이었다. 1시간 가까이 일찍 출근하여 학교 도서관 문을 열고 전교생을 맞이 했다. 아이들도 나도 학교 도서실에서 아침을 맞이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독서의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여름엔 냉방을, 겨울에는 난방 장치를 미리 틀어주었다. 봄 가을엔 창문을 미리 열어 환기해주거나 시원하게 해주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나태함이 오래된 습관을 허물게 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늦잠을 자기도 하고 느긋하게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낸 덕분에 내 몸의 독서시계는 지금 휴면 중이다. 이대로는 퇴보하는 정신줄을 놓칠 것만 같은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2021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독서노트를 집어들었다. 많이 놀았다. 일상의 삶만 있고 사색하지 않는 삶을 2년 넘게 산 듯싶다. 다시 책 읽는 나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했으니!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중이다. 어느 새 텔레비전에 익숙해진 모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1년에 최소한 200권 이상을 읽어냈던 열정을 찾고 싶다. 아무리 못 읽어도 사흘에 한 권은 읽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밥 먹듯 읽어야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선생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1학년 아이들은 내게 늘 물었다. 책을 얼마나 읽어야 하냐고. 아침에 등교하면 책을 읽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많이 읽는 아이들은 1년에 천 권을 너끈히 읽었고 난독증 아이는 낭독을 하며 좋아졌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차분해졌고 생각이 깊어졌다. 하루 한 편 시 외우기를 할 때는 글자를 잘 모르는 아이까지도 금방 깨우쳤다. 동시집 한 권을 통째로 외우게 된 아이는 글도 무척 잘 써서 선배들보다 더 놀라운 문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교생이 해마다 자기 문집을 만들었고 체험학습 보고서도 척척 해냈다.

"선생님, 책을 얼마나 읽어야 해요? 하루에 한 권 읽으면 되나요? 책을 읽으면 뭐가 좋아요? "

" 글쎄, 얼마나 읽어야 할까요?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 여러분의 몸을 만들지요? 그런데 책은 우리 마음과 정신을 만드는 것이니 밥 먹듯, 간식을 먹듯 자주 읽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책을 좋아하게 된답니다.

"선생님이 책을 좋아해서 읽다 보니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책이 친구가 되었답니다. 마음이 힘들 때, 책에서 위로를 받지요. 뭔가 알고 싶을 때나 새로운 것, 옛날 사람들의 지혜도 책이 가르쳐 준답니다.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요."

1학년 때는 엄청나게 책을 읽던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게 가장 아쉬웠다.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서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놀이나 게임 등은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유투브까지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현실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어른들의 독서생활이다. 학교를 떠나 집에 가면 책을 즐겨 보는 집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이다. 어른들도 어렵고 하기 싫은 독서를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는 어렵다. 언제부턴지 학교에서도 독서 활동이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현실이 더 걱정이다. 이스라엘처럼 정규교육에서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이나 학생들이 많이 보는 방송 프로그램조차 독서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들추는 참혹한 사건사고나 국민들을 편가르는 정치 방송이 난무한다. 방송을 보면 세상이 온통 범죄로 뒤범벅이다. 선정적이다. 정신을 고양시키는 선한 독서 프로그램이나 강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밥 먹을 때마다 독서를 생각하라고 했으니 나 역시 지켜야 한다. 교단을 떠났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선생님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어디를 가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선생님의  DNA를 잊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가까이 할 일이다. 칠순을 향해가고 있으니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책이 최고다. 독서는 그 어떤 행동보다 뇌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더 효과적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쉼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정리되어야 하며 논리를 갖추어야 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뇌세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순간마다 사라지는 나를 저장하는 일이다. 살아온 삶을 되새김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성찰하는 인간이 되고 정신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게 됨을 실감하곤 한다. 그러니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는 날은 죽은 날과 같다. 나에게 그런 날이 오래 지속되는 삶이 된다면 나는 과감히 밥숟가락을 놓을 생각이다. 그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슬픈 시간일 것이므로.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책을 읽고 서툰 글일지라도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죽는 날까지 진정한 인간으로,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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