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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변화

시나브로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는 것을

  • 입력 2024.03.26 09:59
  • 수정 2024.03.27 15:01
  • 기자명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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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쿠키 드실래요?" 저녁에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말을 건넨다.

"갑자기 웬 쿠키?" 운동을 오래했더니 당이 떨어진 것 같다며 노루목에 달려가 쿠키를 사왔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괜찮아. 양치했어, 안 먹어’라고 말했을텐데 요즘은 대체로 거절하는 법이 없다, 전에 몇 차례 사양했더니 엄청 서운해 한다.

그 다음에는 권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방법을 바꿨다. 일단은 거절보다는 수락하는 법을 택했다. ‘응 고마워 잘 먹을게’ 과자 한 쪽이지만 아이의 마음이 예쁘다. 동그란 비스켓을 보며 아이의 마음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둥글둥글, 마음씀이 원만한 00이 덕에 오늘 저녁은 내 마음도 둥그렇게 부풀었다.

보는 사람마다 쿠키 드실래요? 나눠주다 보면 본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몇 개 안 될 것 같다. 정작 본인은 몇 개나 먹었을까? 여기저기 나눠주기 바쁘다. 마음씨 좋게 인심 후하게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씨가 참 곱다. 저 고운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아이가 인색하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웃는 얼굴 넉넉한 마음씨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말씨. 은연중에 욕설을 뱉는 것을 보고 저 버릇을 어떻게 고칠까? 연마했다. 혼내고 나무라기보다는 방법을 살짝 바꿔 보았다.

‘누가 우리 00이 입에서 욕이 나오게 했을까? 00이 욕 할 줄 모르는데. 엄청 화났나보네. 00이한테 누가 욕을 가르쳤어? 옆에 있는 선배님 혼나야겠네. 후배한테 욕을 먼저 가르친 것 같네’ 이 정도 하면 알아 듣는다. 욕설을 뱉은 당사자는 나무라지 않고 옆 사람을 질타하니 오히려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만하라고 손으로 비는 시늉을 하며 눈을 찡긋거린다. 그런데 장난기가 발동한 선생은 1절만 하면 될 것을 그 모습이 재밌어 2절, 3절 연달아 한다. 다시는 안 한다고 하면서도 한 번씩 툭 튀어나오는 통에 곤욕을 치른다. 의도는 없지만 은연중에 등장하는 육두문자. 슬그머니 나오는 통에 본인도 깜짝깜짝 놀란다. 한꺼번에 고칠 수는 없지만 한 번 두 번 이야기하다 보니 많이 줄었다. 본인도 민망한지 욕설을 뱉고 나면 놀란 토끼가 된다. 장족의 발전이다. 이젠 눈치를 본다. 자신이 안 할 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알아차림에서 시작된 아이의 변화는 경이롭다. 이 맛에 교육을 하나보다. 전년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00이의 모습,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쑥 빠져 나가는 것 같아도 시나브로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물이 다  흘러 버려 헛수고인 줄 알았는데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다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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