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탐라는 인문학, 그곳에서 인문학을 잇수다

전라남도교육청 미래교육과 독서인문교육 발전방향 모색

  • 입력 2023.12.04 14:44
  • 기자명 최수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고요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 탐라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곳에서의 여정은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인간 본성과 연결된 인문학적 사유의 영역으로 빠져들게 한다.

11월30일~12월 2일, 전남교육청 미래교육과는 2023 독서인문교육정책사업 참여교원을 대상으로 역량강화연수를 실시했다. 제주의 역사 ․ 생태 ․ 예술을 기반으로 ‘인문학길 탐방’과 23학년도 독서인문교육 성과공유를 위한 ‘인문학을 잇수다’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첫번째 정지, 미디어아트

제주는 독특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첫날 우리가 찾은 곳은 ‘노형수퍼마켙’이다.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여정’이라는 스토리로, 내부는 ‘노형수퍼마켙 프리쇼’, ‘베롱베롱’, ‘뭉테구름’, ‘와랑와랑’, ‘곱을락’ 등 미디어아트 영상 공간을 중심으로 한 총 5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형수퍼마켙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잃어버린 경계에서 시작된다. 1981년 어느날 노형수퍼마켙에 문이 열려 제주의 색을 빨아들이며 수퍼는 온통 회색으로 도배되어있다. 색을 잃어버린 이곳은 흑백으로 묘한 기시감마저 들었다.

두 번째 정지, 자연 속의 철학

제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함께 담고 있다. 바다를 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 고요함 속에 자연이 주는 인문학적 사유가 떠오른다. 바위, 바닷물, 하늘과 별들은 자연의 순환과 삶의 유동성을 나타낸다. 둘째 날 우리의 여정은 제주의 숨은 보석, 곶자왈 환상숲에서 시작되었다.

자연의 노래, 곶자왈 생태길, 여름에는 시원, 겨울에는 따뜻한 곶자왈 숨골에 조심 조심 찾아 들었다
자연의 노래, 곶자왈 생태길, 여름에는 시원, 겨울에는 따뜻한 곶자왈 숨골에 조심 조심 찾아 들었다

탐라의 자연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환상숲은 자연의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을 지배할 수 없는,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 곶자왈은 자연이 주는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나무들이 다칠까 싶어 우산 대신 비옷을 입고 거닐었다. 삶의 연륜과 지혜가 묻어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 조심 숲으로 들어갔다.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덤불이라고 한다. 곶자왈은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거나 숯을 만들고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던 곳이었다. 이 곳은 제주의 천연 원시림으로 용암이 남긴 신비한 지형 위에서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살아간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곳으로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오늘날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환상숲은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식물들을 만나고, 새들의 소리와 함께 숲을 거닐면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산굼부리 억새밭의 아름다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산굼부리 억새밭은 겨울의 초입에서도 그 영롱한 자태를 한껏 보여주었다. 푸른 하늘이 젖혀지는 억새밭은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산과 바다가 만나는 자연의 포근한 품 안에 있는 듯하였다. 은은한 황금빛 물결은 마치 자연이 칠한 수채화 같았다. 햇살 속에서 빛나는 억새는 마치 자유롭게 춤을 추는 듯, 숨쉬는 듯한 묘한 매력을 뿜었다. 들판을 걷는 느린 걸음은 마치 자연 속에서 숨 쉬는 듯한 평온함마저 느끼게 한다.

탐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태길-유배길-신비길그곳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 힐링과 안정을 선사해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사색할 수 있었다.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우리의 마음도 함께 풍요로워지는 곳,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탐라는 우리에게 자연과의 소중한 대화와 새로운 영감을 선사한다.

세 번째 정지, 역사 속의 제주

셋째 날, 주제는 제주 4.3 평화길이다. 아침 일찍 찾은 곳은 북촌마을 널찍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형을 뜻하는‘너븐숭이’다. 북촌마을은 국제법상 전쟁 중일지라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대표적 사례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1949년 1월 17일에 있었던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3백여 명이 한 날 한 시에 희생되었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이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쪽과 서쪽, 들과 밭에서 자행되었다.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제주 4 ·3 당시 하루에 가장 많은 희생이 있었던 북촌리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기념관 바로 앞에는 <애기무덤>과 <위령비>가 있다.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순이삼촌비>가 있다. 순이삼촌은 현기영 작가의 소설로 아무도 4 · 3을 꺼내지 못하던 시설 1978년, 북촌리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붉은 피로 상징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비석에는 사실에 바탕을 둔 순이삼촌 구절들이 새겨져 있다.

「그 당시 일주도로변에 있는 순이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섯 개에는 죽은 시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먹구슬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 시체를 뜯어먹고 다리 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당시 섬 인구의 약 10%에 해당되는 3만여명에게 감행된 대학살은 우리에게 잊혀질 수 없는 아픔, 기억해야 할 교훈으로 남아있다. 한 동안 은폐되어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제주 4·3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 진실의 형체가 선명히 드러났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 침묵으로 일관한 제주 4 ․ 3은 과거의 일이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픔을 남기고 있다. 그 어둠과 비극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제주 4 ․ 3은 무력으로 인한 비극이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소중한 가치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 아픔과 상처는 우리가 평화와 이해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함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상처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 정지, 여정의 마무리

제주는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여정을 담고 있는 곳이다. 자연, 역사, 예술, 문화,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인문학적 탐구를 위한 완벽한 장소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얻은 통찰력과 영감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줄 것이다. 제주의 인문학적 탐방은 마음을 여는 여정이자, 우리의 삶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세상은 끊임없는 소란과 바쁨으로 가득 차 있다. 분주하고, 생각에 잠겨 어지러운 일상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 주변에 흐르는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잊게 된다. 그러나 가끔 멈춰서 살펴보면, 우리가 평소에 간과했던 아름다움과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인문학 기행은 바로 그 시간이었다. 쉼없는 분주함 속에 놓친 것들을 발견하는 기회. 생태길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고 평화길에서 삶의 방향을 되돌아본다. 그 속에 나는 자신을 들여다 본다.

멈춰서 보니, 나와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고, 세상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 관계와 조화 속에서 삶을 찾아 나선다. 곳곳에서 만난 해설가들의 이야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제주를 알고 탐라를 느낀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저작권자 © 전남교육통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