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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공 '방구석 독서 모임' 활동을 하며

  • 입력 2021.03.17 11:32
  • 수정 2021.03.18 13:07
  • 기자명 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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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이나 행정실은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반면, 교장실은 혼자 쓰다 보니 때로는 외로운 섬처럼 느껴진다. 교감과 행정실장은 이러저러한 문제로 다른 직원들에 비해 자주 찾는 편이지만 결재를 받거나 특별히 협의할 일이 없는 직원은 마주할 일이 적다.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들은 출근하자마자 학생 지도를 이유로 교실에 들어간다. 다른 직원들도 제각기 바쁘게 지낸다. 교장도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다른 교직원에 비해 여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차라도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싶어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길 때가 있는데 모두가 일에 열중하고 있으면 머쓱하다. “차 한 잔 드릴까요?”라는 말을 잊지 않지만 혼자만 여유 부리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 하던 일 제쳐 두고 응대하려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뒤돌아서기 일쑤다.

일의 성격이나 분위기 때문에 행정실보다 교무실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너무 잦아도, 그 반대도 문제다. 외로운 섬에 갇혀 지내다 보면 직원들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어서다. 교감은 교사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이나 교사들과 한 발 떨어져 있는 나는 그들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적다. 전임지에서는 가끔 차를 마시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정을 쌓았으나 학교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이곳에서는 쉽지 않다.

교육부에서는 교직원의 집단지성으로 교육력을 높이고,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학교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이후 '전학공'이라 줄여 사용함)’를 조직·운영할 것을 권장한다. ‘새 학년 집중 준비 기간에 올해 전학공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의논했는데 내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작년에는 다른 학교처럼 한 팀만 운영했지만 올해는 원하는 부서를 받아 그룹별로 활동해 보자고 했다. 충족 요건은 최소 인원 네 명. 세 명으로 하면 한 명이라도 출장을 가면 운영이 어려워서다.

마을 학교 활성화’, ‘인공 지능(AI) 교육’, ‘슬로우 리딩(slow reading)’, ‘책 놀이를 몇 명의 선생님들이 제안하자 나도 가볍게 참여하는 독서 모임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소외되는 교사가 생길 것 같아서다. 책 놀이는 슬로우 리딩의 영역에 포함되어 네 개로 좁혀졌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관리자를 포함하여 13명뿐이라 최대 세 개의 부서를 조직할 수 있다. 서로 인원수를 확보하려고 경쟁적으로 자기 팀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려 시끌벅적했다.

먼저 교무부장이 피피티(PPT)까지 준비하여 마을학교 활성화를 기세 좋게 발표했다. 이름은 월마나 좋은가?’. 월산초 마을학교 나눔의 줄임말이라고 재미있게 설명했지만 희망하는 사람이 두 명 뿐이라 탈락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웃음을 많이 주었다. 내가 제안한 모임은 예상대로 보건교사가 적극적으로 인원을 확보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그 자리에 없었던 교사를 전화로 설득하여 최소 인원을 채웠던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 교육’, ‘슬로우 리딩과 함께 세 개의 팀으로 확정했다.

3월 첫 주에는 팀별로 연간 계획을 세운 후에 한데 모여 대표가 발표했다. 우리 팀은 이름까지 방구석 독서 모임으로 새롭게 지어 유치원 교사가 소개했다. 방구석은 방의 속된 말이지만, 발 뻗고 편하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 연상된다. 편안하게 참여하는 독서 모임의 뜻을 담아 낼 수 있고, 부르기도 쉬워 이름을 바꾸었다. 물론 최근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중에 방구석 1과 베스트셀러인 방구석 미술관에서 단서를 찾았다.

지난주 수요일에 첫 번째 전학공이 있었다. 우리 팀은 계획대로 자신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책을 각자 소개했다. 보건 교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읽었던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단다. 영양 교사는 대학 때 감명 깊게 읽은 시집을 소개했고, 유치원 교사는 행복을 주제로 쓴 책에서 깨닫게 된 것을 생활과 관련지어 얘기했다. 나는 학교속의 문맹자들을 쓴 지은이와 맺은 인연으로 변화한 점들을 소개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새로 전입한 유치원 교사는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단다.

시장 경제에서 기업이 독과점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기업끼리 경쟁하면 도태되지 않으려고 여러모로 노력한다. 전학공도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나도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시도했다. 자칫 겉돌기 쉬운 교원의 참여를 높이고, 선의의 경쟁으로 다른 팀에 자극을 주어 활발하게 운영될 것으로 기대한다. 외로운 섬처럼 떠돌던 관리자와 교직원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어떤 조직에서나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는 심리적 거리는 있게 마련이다. 이를 권력 거리(power distance)’라고 한다. “권력 거리가 짧으면 상호의존적이지만 반대인 경우는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고 하니 소통과 협력을 기대하려면 권력 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생 책 소개하기, 어른을 위한 동화 읽고 생각 나누기, 고전에서 길을 묻다, 독서를 넘어 글쓰기 등의 주제로 만나게 될 방구석 독서 모임이 기다려진다.

 

최종호(담양 월산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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