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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욕망은 불면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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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욕망은 불면증이다.
  • 김광호
  • 승인 2021.03.04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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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이여! 쉬어라. 게으름이여! 찬양하라.

 

현대인의 욕망은 불면증이다.
현대인의 욕망은 불면증이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인간은 충족시킬수록 욕구가 커지는 유일한 동물,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유일한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요 소유의 동물이다는 것이다.

우린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바쁘다.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할 것 같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뭔가 시간을 낭비하며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린 쾌락의 쳇바퀴를 멈추지 않고 계속 밟아야만 한다.

전세로 살다가 평수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해도, 자전거를 타다가 외제 승용차를 사게 되어도, 중병에 걸려서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건강을 되찾아도 행복이란 단어를 망각한 채 또다시 쾌락의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시간을 갉아먹는 욕망체로 전락하고 만다.

'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인 알렉스 리커만 박사는 행복 수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행복 수준은 생활사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건들과 그에 따른 결과에 익숙해지면 거의 항상 기준선 수준으로 돌아간다,"

P씨에게 뜻밖의 행복 요소가 생겼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렀는데 갑자기 중위권으로 올랐다. 과연 P씨는 계속해서 지금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P씨는 또다시 기존에 설정된 행복 수준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P씨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이렇게 말한다. "그래, 사랑하는 아들아, 고맙다. 이젠 아버지도 여한이 없구나. 성적이 만년 하위권이었는데 드디어 중위권까지 올라왔구나."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칭찬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P씨는 다음날 아침에 식탁에서 아들에게 살갑게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야. 아버지가 유명한 과외 선생님을 소개해 줄게. 우리 함께 노력해서 상위권까지 성적을 올려보자. 아들아,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아. 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성실이여! 쉬어라. 게으름이여! 찬양하라.
성실이여! 쉬어라. 게으름이여! 찬양하라.

우린 자신에게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혹 우리가 P씨가 아닐까? 왜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 그렇게 능률과 효율만을 중시해야만 행복하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린 진정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한 적이 드물다. 오직 끊임없이 개선하고 발전하며 좋은 결과를 낼 욕심으로 일을 한다. 몸은 망가져 가는데 야근이며 특근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 못하다가 죽었다는 귀신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주위엔 오직 일만 하다가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에 대한 의욕은 넘치지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는 잊은 지 오래다. 또한 얼마나 만족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이었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일을 더 하고 싶어서 더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행복에서 멀어지려고 애쓰고 있다. 더 나은, 더 많은 일을 찾으려는 욕망이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잠재워버리지는 아니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비효율적이도 좋으니 이젠 무료하게 낮잠 자기, 친한 사람과 긴 통화하기, 연가(年暇)를 내어 꽃 구경가기 등 심오한 놀이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삶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데도 우린 여전히 일에 파묻혀 행복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쾌락의 쳇바퀴를 멈추지 않고 계속 밟아야만 할까?
우린 쾌락의 쳇바퀴를 멈추지 않고 계속 밟아야만 할까?

버트런드 러셀의 작품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일부분을 정독하며 아날로그적인 삶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잠깐의 여가(餘暇)야 즐겁겠지만 24시간 중 4시간만 일한다면, 사람들은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현대 문명에 대한 비난이다. 과거 어느 시대도 이런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마음 편히 노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어느 순간 우리는 능률 숭배에 억제되어 왔다. 현대인은 모든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코 그 자체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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