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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어요

여수송현초 6학년 현장체험학습 후기

  • 입력 2021.01.04 11:38
  • 수정 2021.01.04 15:48
  • 기자명 김린아(여수송현초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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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여행

여수송현초(교장 노광식) 6학년이 붙인 이번 여행의 주제이다. 진즉 다녀와야 할 역사체험학습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단을 내리셨다고 했다. 가자. 꼭 가자. 그러나 단속을 단단히 하고 가자. 코로나 예방 단속! 선생님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수천, 수만 번 말씀하셨다.

차 안. 2인석 자리에 한 사람씩 앉았다. 1211일 금요일.

스물네 명이길 얼마나 다행이냐!”

긴 한숨을 내쉬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심초사어제 안내를 하시면서 선생님의 말씀과 행동과 얼굴빛에서 읽을 수 있는 낱말이었다. 수없이 강조하셨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애들아, 밖을 내다보렴. 완전 가을이다. 찐 가을이라고. 친구들과는 교실에서 맨날 이야기 하잖아.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려서 가을을 좀 만나보렴. ?”

지지배배 끝없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바쁜 우리에게 선생님은 큰 눈을 도옹그랗게 뜨시고는 마이크를 대고 외치셨다. 일단 차에 오르니 조금 마음이 놓이시나 보다. 하긴 우리 선생님, 늘 떠나시는 것이 좋다 하셨으니. 선생님도 아마 가슴이 확 트이실 것이다.

두 시간여 끝에 도착한 강진. 에구머니나. 도착 직전 선생님으로부터 본래 계획된 여정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김영랑 생가가우도 걷기인데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약용 유배지가 공사 중이라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특기 제일 많이 걸어야 할 곳이 정약용 유배지라는 것을 들은 바 있어 얼마나 좋았던가. 다만 우리 담임 선생님은 달랐다. 사회 시간이며 국어 시간, 과학 시간 등 틈만 나면 정약용을 외치시는 우리 선생님은 정약용 유배지까지 걸어가 그곳 아름다운 자연들을 감상하면서 다산의 철학을 우리에게 한껏 공부시키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던지라 몹시 슬퍼하셨다. 진짜로 가야 할 곳을 못 가게 되었다면서 화를 내셨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마치 우리가 꾸미기라도 한 것처럼 했다.

먼저 바다 건너 가우도로 가는 다리를 걸었다. 입장권을 받아 선생님과 약속 시간을 잡고 섬 곳곳을 돌아보고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다. 한다면 하는 우리, 저 멀리 보이는 출렁다리를 꼭 건너 가우도의 정상 정복을 하려니 했는데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다리 중간에서 만난 아저씨의 말씀으로는 정상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밖에 없는 시간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입구를 가려는데 선생님들께 들어오셨다. 우리를 뒤로 돌게 하여 몰고 간 곳은 단체 사진 촬영지였다. 이곳 바다는 남해일까 서해일까.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뒷배경 삼아 칠십여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육지로 나오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주문으로 학급 사진도 세 장이나 찍었다.

가우도를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강진 가까운 장흥의 어느 별미집으로 갔다. 연탄 불고깃집. 가우도 길을 한참 걸었으니 시장은 곧 반찬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모두 겁 없이 달려들어 점심을 먹었다. 사실 고기를 많이 먹지 않은 나도 고기 부족을 느낄 만큼 많은 양의 고기를 내 입은 부르고 있었다. 2반 한 친구의 재미있는 액션으로 선생님들이 음료수를 사 주셨다. 음료수도 포만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마운 것. 대한민국의 남쪽은 먹을 것으로 치면 진짜 세계 1위일 듯싶다. 물론 우리들의 서식지 여수를 포함해서 말이다.

점심 후 김영랑 시인의 생가로 향했다. 차 안에서 설명해주신 선생님의 설명으로 짐작은 했지만 강진의 부자셨다는 김영랑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은 놀라울 정도로 꽤 넓었고 계획적으로 꾸며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강진군청에서 나오신 가이드 선생님들이 계셔서 참 알찼다.

영랑 선생님은 이름이 김윤식.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멋지게 사용한 시인이면서 대단한 항일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끝까지 저항해서 싸우셨는데도 독립운동가라는 명예를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독립운동가라고 인정되었다니 참 다행이다. 생가 마당 주변에 김영랑 선생님의 시비가 있었다. 소리 높여 모두 읽었다.

사랑채와 외양간의 옛 물건들을 유심히 보고 마당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마당이었다. 시를 좋아하시는 우리 선생님은 이젠 볼 것 다 봤으니 어서 집에 돌아가 쉬었으면하는 마음을 얼굴 가득 몸 가득 비비적거리는 우리를 또 하나의 시비 앞에 멈추게 했다. 우리는 소리 높여 시를 외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선생님께서 여행은 기다림이라시더니 막상 떠나서 다녀오고 보니 한 줌 꿈인 듯싶었다. 돌아오는 길은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우리는 또 외쳤다.

, 왜 이리 빨리 와요? 학원에 가야 하잖아요.?”

두 말씀 없이 바이바이를 외치시고 교실로 들어가시는 선생님이 미웠다. 어쨌든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작성자 : 여수송현초등학교 6학년 3반 김 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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