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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주 외돌개 / 이상인

  • 입력 2020.11.16 13:12
  • 수정 2020.12.29 14:35
  • 기자명 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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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외돌개

이상인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이웃들은

차츰 무너져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손잡고 팔짱 끼고

수천수만 년을 함께 하자던 약속도

하얀 파도가 되어 날마다 부서지곤 했다.

 

하룻밤 꿈을 꾼 듯

나는 홀로 낭떠러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그저 멀리에서나 바라보다가 뒤돌아서는,

나는 어느 날 불쑥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쉼 없이 자라나는 욕망과 분노를

스스로 깎아내며 아무도 오르지 못할

절벽으로 우뚝 선 것이다.

 

내 몸을 깎고 또 깎아내다 보면

하나의 곧은 붓으로 서게 되리라

나의 마지막 완성된 정신을

저 넓은 바다 위에 너울너울 써놓고

바닷속으로 돌아가리니

그대들은 비로소 일렁이는 그 푸른 마음

오래 읽어보며 서 있으리라.

 

작가 소개 / 이상인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 광양중마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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