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외돌개
이상인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이웃들은
차츰 무너져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손잡고 팔짱 끼고
수천수만 년을 함께 하자던 약속도
하얀 파도가 되어 날마다 부서지곤 했다.
하룻밤 꿈을 꾼 듯
나는 홀로 낭떠러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그저 멀리에서나 바라보다가 뒤돌아서는,
나는 어느 날 불쑥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쉼 없이 자라나는 욕망과 분노를
스스로 깎아내며 아무도 오르지 못할
절벽으로 우뚝 선 것이다.
내 몸을 깎고 또 깎아내다 보면
하나의 곧은 붓으로 서게 되리라
나의 마지막 완성된 정신을
저 넓은 바다 위에 너울너울 써놓고
바닷속으로 돌아가리니
그대들은 비로소 일렁이는 그 푸른 마음
오래 읽어보며 서 있으리라.
작가 소개 / 이상인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 광양중마초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