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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꿈을 찾아 가는 길

  • 입력 2020.06.08 15:10
  • 수정 2020.06.09 12:58
  • 기자명 김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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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김현옥

아들이 연극 공연을 한다며 지인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광주시민회관 공연장으로 갔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손소독을 하고, 방명록에 연락처를 적었다. 실내에는 옆으로 의자 간격을 하나씩 비우고, 앞뒤로는 서너 열 간격으로 아예 줄을 비워 두었다.

팜플릿을 보니 지인의 아들은 배우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희곡을 쓴 작가였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시골집에 있는 개복숭아나무와 지금은 쓰러지고 없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생각하며 작품 구상을 하였다고 한다. 작품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녁 7:00시에 무대에 올렸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어디선가 시골 할머니들의 노동요가 들려온다. 주인공인 시골 시인이 등장하여 감자를 심는다. 어디선가 요란한 포크레인 소리가 들린다. 마을에 놀이공원을 세우려는 개발자가 등장하더니 시인과 말다툼을 한다.

여기까지 본 순간, ‘,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지인은 시인으로서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에 지인이 사는 마을에 갔더니 앞산의 소나무를 베어내는 전기톱소리가 요란하였다. 그 조용하고 아늑하던 마을이 개발의 붐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지인 교사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며 산다. 딸과 아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홈스쿨과 검정고시를 보았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위해 여행과 악기 연주, 연극 공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제 희곡까지 써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연극의 주인공인 시인은 바로 지인을 표현한 것이었다. 시골에 들어와 조용히 살고 있다가 개발 붐으로 다시 떠나야 하는 불안한 현재 삶을 바탕으로한 지인의 꿈과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사라지고 있는 이웃 간의 정, 훼손되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지인의 안타깝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인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계와 두레로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며 농사를 짓던, 끈끈한 정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지나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어려서 듣던 할머니의 디딜방아 노랫소리, 마을공동체의 모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느린 호흡의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주인공인 시인은 안타까워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땅에서 내쫓기는 위기 앞에서 시인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내적 갈등을 겪으며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때 개복숭아나무 정령이 나타나 겨려를 해준다. 이제는 과거에 머물지 말라고. 사라진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고. 우리 마음속에 늘 함께하고 있다고.

산업화 발전이란 미명하에 현대인의 삶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있다. 물질이 생활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함부로 자연을 파헤치지 않았다. 매 끼니를 걱정할 만큼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웃 간에 떡을 돌리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살았다. 나무 한 그루라도 함부로 베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자연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함부로 산을 헐어 길을 놓고 건물을 높게 쌓고 있다.

 

지인 가족의 삶을 생각한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삶,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용기있게 살고 있다. 시인 농부인 아버지, 연극하는 아들. 쉽지 않은 삶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큰 길로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오래 전에 잊혀진 옛길을 찾아가는 삶이다. 굽이굽이 작은 숲길을 가늘게 이어가는 삶이다. 그러나 가슴이 원하는 인생을 뜨겁게 살고 있다. 주인공 시인이자 지인의 삶과 꿈을 되새기면서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가슴 두근거리며 실천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교실수업에 연극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어려서 놀던 소꿉놀이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다. 소꿉놀이를 하고 있으면 마법처럼 한순간 시간이 사라지고 놀이만이 남았다. 이런 놀이 역할극을 적용하여 수업의 지식들을 몸으로 살려보면 어떨까?

석 달째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해왔다. 다행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강제 격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3학년에 이어 다음주부터 1학년도 학교에 온다. 시험 대형으로 혼자씩 앉고, 더구나 마스크까지 쓰고 교실수업을 한다는데 역할극 수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연극을 보고 나니 작은 용기가 생긴다. 교과서 지식만 떠먹여주지 말고, 연극과 토론으로 재구성하여 익히도록 하겠다. 실생활 삶과 연결하여 학생들이 배움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야겠다.

30년 교직 경력을 겪고 나서야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다니, 늦어도 많이 늦었다. 이제는 어떤 길을 가더라도 손해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남의 눈에 발각될 작은 실수가 두려워,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면 그 후회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용기있게 가지 않은 길을 가자.

오늘 본 연극이 내게 새로운 방향 전환을 암시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였다.

훗날에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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