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붕어 이상인 천원에 네 마리를 낚았다.나를 만나기 위해 이 황금 붕어들은제 몸을 뜨거운 불에 굽고 있었을까. 종이 봉지에 담아 호주머니에 넣고찬바람에 자꾸 아려오는금 간 왼손 약지 손가락을 덥힌다.혈이 통하는지 부은 곳이 부드럽다. 황금 잉어들의 체온이 점점 식어간다.뜨겁고 따뜻하던 것들이 미지근해진다.황금 잉어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내 손을 통해 그네들의 남은 생을다 거두어들인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약지 손가락이 다시 아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삶이 식어버린 황금 잉어들딱딱하게 굳은 등지느러미가 부서진다.아내도 자식들도 거들
오월에 밀려오는 것들이상인 오월이 되면어떤 아픈 기억들이신록처럼 밀려오는가밀려와서 빈 가슴을 가득 채우는가 정일독서실 지하 식당에서생쥐 떼처럼 모여 밥을 나누어 먹던대학생 형들은 죽어서지금 어디를 지나가고 있는 것인가 그해 오월새처럼 힘차게 날개를 펴고날아가던 그 많은 돌멩이는드디어 바라던 나라에 닿았을까지금도 두 눈 부릅뜨고우리를 깨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월이 오면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이다시 발길을 돌려 우리에게 밀려온다.나는 다가오는 것들의 이름을하나씩 호명하며 손바닥에 써본다. 작가 소개 / 이상인- 전남 담양 출생. 광주교육
나비책이상인 무꽃에 앉아어제 읽던 자신을 접었다, 펼쳤다. 아이들이 떼로 모여 앉아책 읽는 소리가 낭랑했다.어른이 다 된 아이들자신의 일생이 적힌 이야기책을달달 외워서 검사받고 있었다. 무꽃에 앉아서내일 읽어야 할 자신을 접었다, 펼쳤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아이들이된통 혼나는 소리가맑은 도랑물처럼 흘러갔다.나도 종아리가 따끔하게 아파서무슨 내용이 쓰여있는지도 모른 채무조건 따라 읽고 있었다. - 시작 노트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자기 확인작업이기도 하다. 어쩌다 시마에 걸려들어 시를 쓴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너의 그리움이 내게로 와 글이 되고나의 그리움이 너에게로 가 그림이 되는 봄날 오후아끼는 벗이 보낸 꽃사진 한 장엔 그리움이 가득하네 진실로 그리움을 아는 이는 봄날의 슬픔을 알고달랠 길 없는 그리움의 실체를 아는 이도 봄날이 슬프다네래퍼처럼 종알대며 진달래 꽃잎 따던 어린 날이 그리워라!(봄에 피는 꽃들은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모르지요. 인생의 술잔을 다 마시지 않고 미리 떠나는 자입니다. 짧은 봄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러지 않나요?)인생의 술잔을 다 마시지 않고 떠난 자는 행복합니다. - 중에서 푸쉬킨
반달에 핀 튤립- 김영중♡이미숙 부부 일 년에 열두 번하늘에 피었다지는 반달부부는 그중에 하나를 따다가정성껏 튤립을 심고 가꾸었지요. 튤립은 이 세상에서가장 맑고 고운 눈을 뜨며푸른 손을 내밀어 흔들었지요.덩달아 반달은 더 환하게 웃더니두둥실 배가 불러왔고요. 드디어 반달 속에활짝 웃는 튤립 튤립 튤립들부부는 열심히 물을 주고사랑을 속삭여주었지요. 튤립을 가득 피운 반달은온 세상을 더 아름답게 비추며제 얼굴에 부부의 고운 마음을한 달에 한 번씩이쁘게 그려 놓곤 한답니다. 작가 소개 / 이상인- 전남 담양 출생. 광주교육대힉교 졸업.
작가 소개 / 이상인- 전남 담양 출생. 광주교육대힉교 졸업.-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당선. 2020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제5회 송순문학상, 우송문학상 수상. 진상초등학교장.
진상초 1학년 우리들은!/ 이상인 진상초 우리 1학년은오늘도 밝은 마음으로학교에 와서엄마 같은 담임 선생님과다섯 명의 정다운 친구들과참새떼처럼 노래 부르고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지내지요. 날마다 서로서로 손을 잡아주고등도 토닥토닥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걱정해 주고정성껏 보살펴 주며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우리 집보다 편안하고 즐거운우리 1학년 교실김0경, 양0영, 장0빈최0윤, 하0원의 웃음꽃이예쁜 매화처럼 한가득 피어난답니다.
다시 오는 봄 험한 세상 속에서도꽃 피울 그날 잊지 않고두려움 없이 꽃잎 열어 젖힌 용기 얼어붙은 땅에도여지없이 봄이 오고 있다고아침 산책길에 쑤욱 얼굴을 내민 여린 싹의 용기 솜이불도 없이 견뎌낸 겨울 밤온 몸으로 받아낸 겨울 바람아무리 어두어도 희망을 품었다고봄을 꿈꾸며 이겨냈노라고 아끼는 벗이 보낸 사진 한 장 속엔그리움 안고 선 유년이 서 있다옹골찬 저 매화처럼 살자는구나.
불쑥 물앵두 꽃이 피었다/ 이상인물앵두 꽃이 피었다.벌써 잘 익은 앵두 따 먹을 생각에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것이다. 앵두를 좋아하던 사람을 가만히 떠올려보고그 떠난 자리에 핀 앵두꽃을 오래 바라보면앵두 익어 눈 붉어진 아침이손님처럼 느닷없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사랑하다가 떠나가는 것도지우개로 쓱쓱 지우듯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단지 때맞추어 찾아오는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불쑥 물앵두 꽃이 피었다.그동안 아끼며 슬그머니 가려놓았던 사랑이자신을 깊이 되새겨보며 피었다, 진다.
흑매향에 눈이 멀어이상인 흑매 운용매雲龍梅 홍매가 피었다기에몇 장 찍으러 다녀오는 길법원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 그만앞차 엉덩이를 들이받았다. 앞차에서 내린 젊은 아줌마눈은 도대체 어따 두고 다니느냐고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뒷목을 감싸는데 그때까지도 아주 소중히 간직하고 왔던너무도 아름답고 은은한매화의 장막이 순식간에 걷히면서빨리 비키라고 빵빵거리는 뒤차들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갑자기 두 눈에 따가운 매연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자두나무이상인 나무를 심으려고 땅을 파는데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시퍼런 자두 알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40년을 넘게 가꾸었던 과수원어느 때부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둘러친 탱자나무 울타리도 꽃들도 사라지고 폐허처럼 잡초만 우거졌다. 오늘은 자두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과거를 움푹 파내고 자두나무를 심었다.한 삽씩 뜰 때마다 아버지의 젊은 웃음소리가우리를 낳아 기르던 어머니의 신음이스며든, 검은 흙덩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자두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자두를 따서 손수레에 가득 싣던 아버지의 풍성한 마음을 고스란히 기억하기 때문자두나무를 다독
홍시이상인 나이를 먹으며 익어간다는 것마음을 안으로 삭히는 것살아가면서 만나는기쁨과 슬픔과 애처로움 같은 것들을한데 버무리고 뭉쳐서 단맛을 내는 것연륜이 쌓일수록얼굴이 벌게지며 부끄러워할 줄 알고어떤 세파에도 물렁물렁하게 대처하게 된다는 것지상에 마지막 남은 등불처럼오래 세상을 깜박인다는 것 작가 소개 / 이상인-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당선, 2020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제5회 송순문학상, 우송문학상 수
운동장에 뛰어내리는 해이상인 새해 새 아침밝고 둥근 해가 운동장에축구공처럼 투두둑 떨어져 내린다. 새해 새 아침새 얼굴의 아이들이 몰려나와신나게 해를 차고 논다.해는 축구 골대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학교 담장 너머 먼 산으로 날아가기도 하고하늘 높이 높이 솟아올라저마다 하나씩의 빛나는 소망이 된다. 새해 새 아침 운동장은 꿈과 희망의 놀이터뛰고 달리고 부지런히 걸어서 닿아야 할한 해의 출발선 새해 새 아침 밝고 둥근 해를 품은 아이들이 자라서화가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의사, 농부, 사장, 멋진 항해사가 되어이 세상 곳곳을따뜻하고 아름
꿈꾸는 저녁 강이상인 강물이 날마다 흐른다는 것은가 닿아야 할 강 하구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그 강 하구와 맞닿아 있는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날마다 힘들게 노를 저어 가는 것은어딘가에 우리가 닿아야 할 꽃 핀 아름다운 언덕과 나루터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노을은 저대로 밝게 빛나며 스러지고풀도 나무도 새들도 잠이 드는데강물 소리만 홀로높은 정신처럼 깊어지는 저녁 무렵 우리네 삶도 흘러온 만큼 저물어비로소 반짝반짝 꿈꾸는 별들이 돋아난다. 작가 소개 / 이상인-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당선,
진상초 은행나무이상인 교문에 서 있는 은행나무노랗게 단풍이 듭니다. 은행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바람도 노랗게 단풍 들고 앉았다 가는 새의 울음소리도노랗게 노랗게 단풍이 듭니다.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은행나무 아래서 술래잡기하는 1학년민재도 진겸이도 민석이도 하늘이도 홍성이도노란 은행잎이 되어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작가 소개 / 이상인-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당선, 2020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제5회 송순
땡볕에 데인 물집 여물기도 전에소낙비에 터진 상처 아물기도 전에무서리 내리던 날 입술마저 터졌건만눈도 멀고 귀도 먹어 입조차 닫혔건만 향기만은 살아서 천리를 품었더니세파에 맞은 몸 성한 곳 없어도안으로만 익어서 삼중고도 잊었구나 피멍 든 상처마다 향기로 채우고구멍 난 가슴마다 사리불을 앉혔으니시간을 팔아 삶을 얻었구나삶을 팔아 영원을 샀구나아름다운 영혼을 질그릇에 담았구나.
가을이 전하는 말 가을은 '갈 '것을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감나무도 사과나무도 공들여 키운 열매들을다 주고 갑니다.거둔 것을 아낌없이 주고 빈 가지로 설 준비를 합니다. 가을이 묻습니다.이 가을에'넌 거둔 게 무엇이지?''넌 무얼 줄 게 있니?' 더 보태려 애쓰지 맑고비울 수 있다면 모두 비우라고아침마다 속삭입니다. 가을은침묵으로몸으로다 보여주는위대한 스승입니다.
누군가가 그리워 혼자 눈물 짓던눈물이 마르지 않은 당신은 참 따듯한 사람이었습니다.그 눈물을 받는 이도, 그 눈물 보낼 이 있던 당신은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도 소리 없는 눈물 닦느라 바쁘던 당신길 잃은 길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도어미 잃은 아기 강아지의 서러운 눈망울에 슬퍼하던 당신은빛이 없어도 빛을 내는 섣달의 달님처럼외로운 이 가슴을 어루만져 녹여주던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가여운 꽃대 올리는 한란이 안쓰러워눈부처 되어 속삭이던 당신은세상에 두기 아까운 천상의 님이셨습니다.
은행나무의 손 편지늘 거기에 우뚝 서 있는그의 가슴 속에서는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더러 철새 날아오는 소리도 들리고 날마다 높다란 키로하늘 깊숙이 고개를 들이밀고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캐내곤 했다.사람들은 그가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믿었지만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늘 거기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던 그가늦은 가을 어느 날노란 손 편지를 날리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그 편지에서기쁨과 희망을 읽기도 하고어떤 이는 자신의 미래를 읽기도 하고 오늘도 은행나무는하늘의 말씀과 땅의 소원에귀 기울이며거기 성자처럼 우뚝 서 있다.작가 소개 / 이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