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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마음을 훔치다니

어디 약자의 마음을 훔쳐가지 않을 사람 없는가.

  • 입력 2024.02.13 10:29
  • 수정 2024.02.13 15:50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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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는 서민의 마음을 1975년에 소설 '도둑 맞은 가난'에서 그려놓았다. 어떻게 가난까지 훔칠 수 있을까?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태양처럼 약자의 마음을 훔치지 말자.
태양처럼 약자의 마음을 훔치지 말자.

가난한 여주인공과 가난을 경험하러 온 부잣집 청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부모는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비관해 자살했고, 주인공은 공장에 다니며 노동자이자 빈민의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은 자취비용을 아끼려고 남자와 동거를 하는데, 그 남자는 알고 보니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가난을 체험하러 왔다.

좀 더 소설로 들어가 보자. "여 봐, 이러지 말고 이제부터 내가 하는 소리를 정신 차리고 똑똑히 들어.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보시는 바와 같이 대학생이야. 아버지가 좀 별난 분이실 뿐이야. 방학 동안에 어디 가서 고생 좀 실컷 하고, 돈 귀한 줄도 좀 알고 오라고 무일푼으로 나를 내쫓으셨던 거야. 알아듣겠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부자들이 제 돈 갖고 어떻게 살아가든 그들의 자유겠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가난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 가난한 사람을 모욕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서민의 가난이 어떤 가난이라고 함부로 말장난하고 몸짓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통 큰 리더자가 도래하길 바라며
통 큰 리더자가 도래하길 바라며

가난의 비극을 엿보자. "여주인공은 청년에게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그를 내쫓았다. 그를 쫓아 보내고 자신이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가난을 지켰나를 뽐내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방은 좀 전까지의 방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난을 구성했던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내동댕이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남자 주인공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자들이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차지 않아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가십거리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요즘 매스컴에 여당 위원장의 연탄 나르기 장면이 화제이다. 서민의 잠자리를 어루만지기 위한 노동을 하면서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웃을 수 있는 저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 그는 박완서의 소설 남주인공의 삶처럼 연탄을 실은 리어카를 끌면서 서민의 마음을 도둑질한 것은 아닐까.

공당의 위원장이 연탄을 나르면서 웃음을 지으며 여유를 부리는 사진은 서민들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행위이다. 그는 연탄 나르기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마천루같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가짜 가난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런 가난 경험을 보여주며 엘리트로 살아가는 자신이 큰 인물임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평생을 산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깊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을까.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사진 찍히는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을 것이다.

국민을 속이고 소외시키며 그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그의 진중하지 못한 언행은 두고두고 기록에 남을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까?

서민은 연꽃처럼 삶을 살고 있다.
서민은 연꽃처럼 삶을 살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은 결국 이제 부자들이 서민들로부터 뺏을게 없어서 가난마저 뺏어간다며 절망하는 여자 주인공의 넋두리로 마무리 된다. 어디 서민의 마음을 훔쳐가지 않을 사람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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