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파킨슨병 의사 고백2001년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신경정신과 의사, 김혜남! 그는 120만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주옥같은 작품을 써내며 인간승리를 보여주고 있다.“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누구보다 유쾌한 심리학자 김혜남이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비밀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낸 인간 정신의 승리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쪽이 책은 니체가 말한 한 문장을 증명한 책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전아현(순천팔마중)잘 몰랐던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이번 제주4·3-여순10·19 평화인권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림여중 공동수업은 재밌었다. 여순10·19와 제주4·3을 나타내는 가면 만들기 수업이 신선했다. 강춘희 선생님의 강의는 슬펐고 생생했다. 제주4·3을 겪은 강춘희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치 어제처럼 선명했기 때문이다. 급식에 나온 주먹밥 2개와 감자, 고구마를 보고 우시는 강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따라 울 뻔했다. 제주 한림여중의 수업처럼 우리 전남에서도 재밌고 다양한 방식의 역사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 역사 시간에 공예나 미술품을 만들면 학생들이 흥미롭게 참여하지 않을까. 급식 체험도 말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여순10·19를 기억했으면 좋겠다.제주4.3추모비 앞에서 헌화하고 있는 전남의 학생들 박혜준(제주 한림여중)‘여수 밤바다’, ‘제주도의 푸른 밤’ 같이 여수과 제주의 아름다움에 관한 노래들은 많고 또 잘 알려져 있지만,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아닌 그 속의 역사와 숨겨져 있는 진실을 알려 주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순10·19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제에서 유족들을 위한 편지 낭독을 들으며 가슴아팠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이별의 슬픔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그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분들을 위해서 더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되뇌었다. 다음에 뵐 때에는 달라진 사회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문석형(순천팔마중)제주4·3특별법은 그냥 제정되지 않았다. 국가의 사과와 인정을 위해 유족회, 재단 등을 비롯한 지역사회 많은 분들이 싸워주셨다. 그 노력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 하셨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우리가 각자 진실을 찾는 손전등이 되어 역사를 비추고 알리는 것이다. 한림여중처럼 여순10·19와 제주4·3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기억하고 싶다. 홍일낭(제주 한림여중)이틀이라는 시간,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여러 현장을 답사하고 전시를 감상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여순10·19를 기억하고 알리자’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알리지 못하고, 알리지 못하면 발전하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정윤수(여수 안산중)“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T.S 엘리어트).”희대의 비극과 그에 따른 피해는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의미다.문자로 접한 제주4·3과 여순10·19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였다. 그러나 이번 평화·인권교육으로 듣고, 걷고, 간접 체험하며 ‘나의 일’이 되었다.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을 계획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 당시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 신 앞에선 유죄이지만 법 앞에선 무죄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검사는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답했다 한다.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죄 ‘제주4·3’과 상관의 명령대로 하지 않아서 학살당한 ‘여순10·19’…….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알려야겠다. 김민주(제주 한림여중)14연대 주둔지는 왠지 들어가기 전부터 으리으리한 느낌이 들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이 넓은 곳이 무기고였다는 것에,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군인들은 그곳에 가득 차 있던 무기들이 같은 민족을 진압하기 위해 쓰일 줄 알았을까, 그런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14연대 군인들은 제주도민 수만 명의 목숨을 가슴에 품고 이곳을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에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훌륭히 보존되어 있는 만큼 설명도 충분히 되어있으면 좋겠다. 김민지(여수 안산중)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지역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제주4·3’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여순10·19’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채원(제주 한림여중)현장 답사를 다니며 제주4·3에 비해 안내 시설이 부족하고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위령비나 위령탑 등이 만들어진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시민들이 마음을 합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정부와 시민들이 협동하여 아픔을 걷어 내길. 제주4·3을 함께 이겨내 주었던 것처럼 나도 여순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시민이 되길 다짐했다. 우리가 걷는 발자국들이 아픔 없는 미래로 가는 길을 트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제주 한림여중 학생과 선생님들
순천복성고등학교(교장 문균열) 우슈팀은 이달 9일부터 11일까지 경북 영주에서 개최된‘제102회 전국체육대회’우수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순천복성고 우슈부는 2015년 창단 이래 도교육청과 지역사회의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으로 전국체전에서 매년 금메달을 따왔다.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순천복성고는 전국에서 명실공히 우슈 명문고임을 또 다시 확인했다.윤여중 선수(3학년)는 우슈 산타 56kg급 결승에서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상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 선수는 “그동안 흘린 땀의 성과가 결과로 나
순천복성고등학교(교장 문균열, 이하 순천복성고) 우슈팀은 이달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충북 보은에서 열린‘제33회 회장배 전국우슈선수권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윤여중 선수(3학년)는 산타 –56kg급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윤 선수는 첫 전국대회에서부터 은메달을 목에 걸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으며, 꾸준한 성과로 올해 제101회 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이 유력시되는 유망주로 점쳐지고 있다.배찬양 선수(2학년)는 투로 남권과 남도 종목에 출전하여 각각 금메달을
순천복성고등학교(교장 강숙영)가 ‘제32회 회장배전국우슈선수권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 2개, 은 1개를 따내고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3일간 충북 보은에서 열린 대회에 순천복성고 학생 3명이 출전하여 전원 메달을 획득하며 전남 최고의 우슈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순천복성고는 우슈부에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으로 창단 이래 전국체전에서 매년 메달을 따왔다.산타-56kg에 출전한 2학년 윤여중 학생은 치열한 접전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태극마
곽재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를 기다리는 필부필녀의 고단함을 사평역에 담았다. 드라마 '사평역'의 한 장면.한국의 60~70년대는 ‘근대화’ 시기로 통칭할 수 있다. 겉보기로는 경제 발전이 한 창인 때다. 속사정은 처참했다. 군사정부의 공업화 전략으로 농촌은 몰락에 몰락을 거듭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이들은 값싼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빈민이 되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에도 고향에 오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넓은 농토를 거느리고 있었던 전라남도 사람들이 근대 공업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들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서, 고향과 타향의 중간 지점에서, 심리적으로든 실제로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농촌의 궁핍함을 벗어나려고 도시로 갔지만 도시라고 해서 농촌보다 좋지는 않았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든 삶의 궤도는 변하지 않았다. 절망은 가까웠고 희망은 멀었다. 누구도 시절의 철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이 시절의 속성을 조세희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 띠(<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중)의 은유로 에둘러 말했다. 시인 곽재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를 기다리는 필부필녀들의 고단함으로 이 시절의 풍경을 스케치했다.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락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사평역에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1981년이라는 연대기 탓에 5·18광주항쟁 이후의 막연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 했다는 ‘오해’가 생겨나곤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1979년 즈음 써 놓았다가 한 해 뒤 겨울 신춘문예에 밀어 넣은 시가 <사평역에서>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60~70년대에 대한 총합이자 다가올 80년대를 예언한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예술가에게 그럴만한 예지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있다’고 믿는다.희망이랄 것도 없는 희망이 ‘막차’인데 그 ‘막차’는 진압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를 싣고 왔다.대합실은 여기를 떠나 저기로 옮겨가는 공간이다. 이제 막 고향 땅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합실이었다면,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과 떠나온 세계에 대한 슬픔 같은 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평역 대합실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 대한 미련도, 저곳에 대한 희망도 없는, 몽롱한 공간이다. 사평역 대합실 속 사람들은 이미 떠나봤고, 짧은 귀향 후에 다시 떠났고, 그렇게 해서 자리 잡은 어떤 곳에서 또 다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떠남이 반복되어 떠돎으로 확장된 이들이 잠시 머물러 있는 그런 공간이 사평역 대합실이다. 이들은 지금 뫼비우스띠에 갇혀 떠돌고 있다. 가다보면 다시 그 자리이다. 그나마 희망이랄 것도 없는 희망이 ‘막차’인데 그 ‘막차’는 진압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를 싣고 왔다.1980년대가 그렇게 열렸다. 5·18의 본질을 사평역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실제로 나라 전체가 침묵했다. 오직 광주·전남 사람들만이 침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사평역 대합실에는 떠난 이들과 남은 자들이 함께 있다. 그들의 공통경험은 ‘전라도 농촌공동체의 몰락’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내 가족, 내 이웃의 생존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걸 뜻했다. 떠난 이들이나 남은 이들이나 등골이 휘도록 1년 내내 일해야 겨우 “한 두릅의 굴비와 한 광주리의 사과”를 얻을까 말까 했다. 원 없이 떠돌았다. 이제는 떠도는 것조차도 힘겹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맨 몸으로 추악한 폭력에 맞선, 불빛 속에 던진 한 줌의 눈물이 ‘5·18민중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드라마 사평역의 한 장면초고속 인터넷망과 KTX고속철도의 시대이다. 한없이 느린 ‘사평역’의 분위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문학적 장치일 수도 있다. 다만 질문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고단한 삶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났는가. 우리에게는 오직 희망만이 남아 있는가. 우리가 눈물을 보탤 안타깝고 가련하고 부조리한 세상은 더 이상 없는가. 글 이정우 사평역, 1985 방송_ KBS TV 문학관 210화 (1985년 12월 21일) 연출_ 전세권 원작/극본_ 임철우 출연_ 김영철, 이주실, 이대로, 전원주, 김희진 외 1981년에 발표된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소설가 임철우는 1983년 단편 <사평역>을 썼다.(둘은 각각 전남대 국문과와 영문과에서 공부한 동기생이다.) 시에 살이 붙어 소설이 됐다. 두 해 뒤 시와 소설은 ‘KBS TV문학관’의 드라마로 송출되었다. TV문학관의 ‘사평역’에는 한국현대사와 5·18에 대한 상징들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다. 학교에서 쫓겨난 대학생은 80학번이며, “아우슈비츠가 있었고 그 후 아무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는 강의실의 판서를 그는 오랫동안 응시한다.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중년의 사내는 30년 넘게 갇혀 있는 ‘감방동료’의 어머니를 찾아 간다. 그 ‘동료’는 빨치산 출신 미전향 장기수였다. 술집 작부가 된 농촌 여성, 자식들이 눈에 밟혀 일하던 식당의 현금을 훔쳐 고향으로 되돌아 도망친 젊은 엄마 등등. 전두환의 폭력 통치가 극해 달했던 시대, 드라마 <사평역>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당대를 기록한 예술가들의 높은 긴장을 보여준다. 올해 5월 1일 KBS가 유튜브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35년 전 작품이지만, 요즈음의 감성으로 보더라도 색감과 연출에 어색함이 없다. 전라도 사투리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사평역’의 배경지역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