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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고양이 예찬

  • 입력 2021.11.09 15:52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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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이 사진(스코티시 폴드)
우리 집 꿈이가 숨바꼭질하는 모습 (스코티시 폴드)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나는 정상일까?'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인터넷 검색 기사를 볼 때도 빠지지 않고 보는 소식은 강아지나 고양이 채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고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마음 아픈 소식이나 지저분한 뉴스보다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단순함과 인간을 향한 무한한 신뢰는 눈물겹다.  때론 사람에게 버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불쌍한 모습을 보면 사람이 저들보다 나은 게 있는지 회의한다.

비록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생명체이지만 그들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 말을 못한다고 마음이 없거나 감정까지 없지 않음을 안다면 함부로 괴롭히거나 잡아먹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도 좋아하지만 고양이만큼은 아니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자기관리를 잘하는 동물이라 강아지보다 수월하다. 날마다 산책을 시켜야 하는 강아지는 아파트에서 키우는 건 조심스럽다. 짖지 못하게 성대수술을 하는 것도 미안하고 때 맞춰 목욕을 시키는 일도 버겁다. 그래서 강아지는 좋아하지만 키울 엄두를 못 내고 그 대신 고양이를 키우는 중이다. 녀석은 살가워서 주인의 표정도 읽을 줄 안다. 그렇다고 함부로 껴안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비록 밥은 얻어 먹고 살지만 도도함을 잃지 않는 자존심은 귀엽기까지 하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주인에게 꼼짝하지 못할 터인데, 당당하고 도도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비굴하지 않는 격에 놀란다. 어디 그뿐인가. 틈만 나면 자신의 몸 관리에 시간을 쏟는다. 목묙을 하지 않아도 결코 냄새조차 나지 않는 청결함이라니! 나는 하루만 샤워하지 않아도 찜찜해서 외출을 못 하는데, 녀석은 물 한 방울 없이 목욕을 한다. 인간보다 진화했음이 분명하다.

녀석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또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거나 탐하지 않고 절제하는 모습이다. 나는 요즈음 단감을 즐긴다. 배가 부른데도 여러 개를 한꺼번에 먹으면서도 녀석이 볼까 봐 부끄러워 한다. 식탐을 이기지 못하는 나에 비해 녀석은 수도승처럼 소식하면서도 건강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녀석은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사람들은 홀로 있으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우울해하거나 슬퍼한다. 고양이는 인간이 갖지 못한 고독력을 가뿐히 넘는다. 관계에 연연하면서도 그 거미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에 비해 고양이는 고독력의 귀재임이 분명하다. 홀로서기의 달인이다. 녀석은 고독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 명상가다.

'인간의 문제점은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함에 있다' 고 일갈한 철학자 파스칼의 명언은 시대를 넘어 진리임이 분명하다. 만약에 인간이 고양이처럼 홀로 있기를 즐긴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지금과 같은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연연하며 끝없이 갈구하고 물질과 관계의 욕망 속에 허덕이는 것이 인간이다.

고독과 명상을 즐기면서도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지닌 이 작은 생명체에게 나는 날마다 배운다. 언제든 떠나도 뒷모습이 간결한 무소유,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는 절제의 미덕, 생존 욕구 외에는 늘 조용한 모습으로 자신을 돌보는 승려 같은 담박함도 미덕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지닌 놀라운 유전자를 지닌 고양이는 미래의 인간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닐까. 하나 뿐인 지구를 더이상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나는 꿈이와 함께 살면서 소비를 줄였다. 해마다 몇 벌씩 사던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의 20%도 입지 않고 계절이 바뀐다. 한 벌 옷으로도 멋지게 사는 녀석이 준 가르침이다. 고기를 즐기던 식생활도 줄였다. 인간은 뭘 그리 많이 다양하게 먹는지 그것도 부끄러웠다. 덕분에 몸무게도 정상체중이 되었고 홀가분해졌다. 세상을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게 필요 없음을 배웠다. 녀석의 조용함도 배움의 대상이다. 고양이 발바닥은 층간소음을 내는 사람들에게 귀감이다. 그러니 집에 들어가면 고양이처럼 고무바닥이 붙은 실내화를 신을 일이다.

꿈이를 기르면서 인간만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렸으니 배움의 대상은 어디에나 있다. 녀석은 물을 오염시키지도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지도 않는다. 인간은 수많은 오염물질과 과소비로 지구를 위험하게 하지 않는가. 이미 각종 플라스틱 잔해물은 고래를 비롯한 바다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만약 지구 상에 인간을 제외 한 동물들이 산다면 지구에는 기후변화의 위험은 아예 없으리라.

그러니 오늘 나는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며 인간의 탐욕을 부끄러워 한다. 그는 분명 스승이다. 배우려는 자에게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그는 속이거나 사기를 치는 일도, 누군가를 죽이거나 갈구지도 않는다. 소유함도 없고 세상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 가족을 해치거나 누군가의 노동력을 갈취하지도 않는다. 마실수록 목이 타는 물질의 노예로 사는 인간에게 그는 스승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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