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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어른의 어휘력

말이 많은 시대, 어떻게 말할까

  • 입력 2021.11.03 13:28
  • 수정 2021.11.04 14:32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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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해하는 말의 품격

나는 세 돌을 넘긴 외손녀를 돌보는 중이다. 1년 동안은 하루 10시간 이상 함께 살다시피 했다. 요즈음은 아침과 저녁으로 3시간쯤 돌보고 있다. 힘들고 고단하지만 자라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딸의 출퇴근을 도우며 딸아이의 어린 날에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함도 갚고 있다. 어미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내 인생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절실한 사람일 수 있음을 생각하며 고단함을 잊는다.

특히, 말하는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서 놀라고 감탄하는 중이다. 힘들게 얻은 아이였지만 제 엄마가 몸이 약해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한 채 780g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 꼬물대던 그 작은 생명체를 건질 수 있었던 건 가족의 간절한 비원에 응답한 의학의 힘이었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건강하게, 온전하게 퇴원하던 날, 몇 달 동안 매일 찾아가서 겨우 몇 분 면회할 수 있는 안타까움이 사라졌다. 어쩌면 모든 생명체는 기적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어미의 숨결 대신 기계음을 듣고 자란 아이라서 더욱 세심해야 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오래 아팠고 특히 소리에 민감했다. 어미와 단절된 채 의료기기의 힘으로 자란 아이, 모유는 구경도 못한 아이라서 면역성이 약하지는 않은지 노심초사 했다. 다행히 어린이집에 적응도 잘해서 모녀가 함께 출근하는 모습은 참 대견하다. 컴컴한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서 차로 10분 거리를 달려 아침밥을 챙겨주고 머리를 빗겨주며 가끔은 착각에 빠진다. 딸아이의 어린 날이 겹쳐지는 탓이다.

어른의 어휘력(큰글자 도서)/유선경 지음/리더스 원/33.000원
어른의 어휘력(큰글자 도서)/유선경 지음/리더스 원/33.000원

어제는 제법 문장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 신기하고 감사했다. 말이 늦터져서 걱정을 많이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어떤 낱말로 기쁨을 줄지. 나는 직장맘으로 살아서 늘 바빴기에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여 기록해주지 못했다. 그뿐인가. 그 시절엔 육아휴직 한 달 쓰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고, 조퇴나 병가를 쓰는 일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엄두도 내지 못했다. 토요일도 근무하던 시절이니 일요일은 더 바빴다.

그러니 언제 말을 시작했고, 배변 훈련은 어땠는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한마디로 엄마로서는 빵점인 셈이다. 명색이 선생이면서도 제 자식의 성장과정을 기록하지 못한 부끄러움, 아이가 언제 어떻게 성숙해지고 있는지, 얼마나 간절히 부모와 함께하기를 원하는지 알면서도 일상에 매몰된 채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교사로서 살아온 삶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가득했지만 자식을 기르는 어미의 삶에는 회한과 후회가 많다. 아름다운 시간들을 남기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운동회 하는 모습을 응원해주지 못했고 졸업하는 모습도 봐 주지 못한 미안함. 연년생인 두 아이가 한참 자라는 6년 반 동안 맞벌이 부부이면서 주말부부로 사는 동안 나는 너무 바쁜 엄마였다는 변명에도 후회는 남는다. 그나마 아이들이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집에선 4년 째 반려묘를 기르는 중이다. 때론 친구처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며 마음을나눈다. 고양이의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사람의 심장이 안정되고 건강한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면 어김없이 내 곁에서 눈을 마주치며 깜빡이는 고양이 눈키스를 발사하는 귀여움에 행복한 설렘도 맛본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우리 집 고양이와 나는 그런 사이다. 고양이는 자기 종족끼리는 '야옹'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야옹'하는 대상은 인간이라는 것. 고양이의 소통 능력이 놀랍다. 상황에 따라 표현하는 소리도 다르다. 반가울 때 내는 소리, 화날 때 내는 소리의 뉴앙스는 전혀 다르다. 놀라운 것은 녀석과는 싸울 일이 전혀 없다.

인간과 살기 위해 자신의 소통 능력을 진화시킨 고양이의 놀라운 적응력에 감탄하는 중이다. 말 대답은 물론 애교 섞인 칭얼거림은 마치 어린 아기 같다. 나는 '꿈이'가 보여주는 고양이의 다양한 어휘력에 놀라곤 한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지만 우린 분명 소통하기 때문이다. 장난을 치다 할퀴면 "아야!"하는 소리에 흠칫 놀라 미안한 듯 숨어서 눈치를 보는 녀석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인간은 자신의 어휘력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상황에 맞는 언어를 선택하는 일,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 말의 품격을 다룬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다. 어른이라 함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면 어른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내뱉는 언어가 모두 말이 되는 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억지 소리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말의 파괴력. 우리 말은 다양한 표현법을 살린 말과 시의적절한 말은 깊이와 감동을 안겨준다.

나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행복하다. 노랫말에 담긴 절실한 표현에 어울리는 악기들의 향연은 언제 들어도 감동을 준다. 음악은 3초 이내로 감동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에 늘 감사한다.

지도자의 언어

정치의 계절답게 말의 홍수시대다. 지도자의 어휘력은 무기가 분명하다. 말의 무게를 감당하는 자, 세 치 혀의 무거움을 아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닌 지도자를 너머 일자천금의 언어로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는커녕 분열과 분노를 유발하는 자가 속출하는 형국이다. 이제는 실망을 넘어 포기 상태다. 아직도 우리에겐 국격을 높여줄 지도자를 가질 행운이 없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가장 덜 나쁜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 꼼꼼히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정치 기피증으로 투표마저 포기하면 최악의 후보를 맞이하는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이므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품격이 그 사람의 인격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 안에, 뇌 속에 없는 어휘가 튀어나올 수 없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나의 몸을 만들듯, 아는 것만큼, 이해한 만큼만 발화할 수 있다. 입력을 한 바 없는데 출력이 될 리 없다. 그러니 모든 말은 발화자에게 귀속된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의 품격이 필요한 요즈음이다. 결코 실수라고 주워 담을 수 없음에도 이 나라의 지도자를 자인하는 그들은 늘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세 치 혀도 감당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앞날을 맡기려 하고 있다. 언어의 앞뒤 문맥도, 단어 선택의 적절성도 갖추지 못한 채, 엉뚱한 답변으로 지적 수준이 의심스러운 자, 책은 읽고 사는지, 분노조절조차 못하고 날뛰는 자, 입만 열면 험담이나 뒷담화 수준의 언어를 남발해서 주워 담기도 바쁜 자들을 보는 괴로움. 그러기에 플라톤은 철인 정치를 외쳤나 보다. 철학자라면 최소한의 자기 검증은 하고 살았을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국어사전에 등재된 50만여 개, 세계 최대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 전자사전에 등재된 5,500만여 개. 우리는 그 낱말들로 대상과 사물을 가리켜 표현하거나 설명하고, 생각과 느낌을 등을 표현해 상호작용하며 성장한다. 다 쓸데없는 소리다. 인간이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낱말 50만여 개, 5,500만여 개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47쪽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나의 한계는 곧 언어의 한계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정언에 공감한다. 특히 공감은어휘력을 키우는 으뜸 조건이다. 영혼을 일으키는 말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글을 쉽게 쓰는 기초 요령, 생각의 충만이 먼저다.  관점을 키우는 책을 읽자.

사물에 쓰는 말과 사람에 하는 말을 구분하라.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가격을 매길 수 있는 상품이나 가축 등에 쓸 어휘를 사람에게 쓰지 않은지, 사람이 하는 일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지, 늘 말본새를 점검해야 한다.  -107쪽

<어른의 어휘력>에는 위에 인용한 글 외에도 말하기와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 매우 풍부하다. 다양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며, 낯선 낱말에는 반드시 각주를 붙여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말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걱정이다. 특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의 태도는 작가의 관점에 비춘다면 흠집이 많다. 제대로 배운 글쓰기가 아니라 쓰고 싶어 쓰는 글의 한계이니 감정에 치우친 글이 많다. 아무도 내 글을 타박하거나 충고해주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충고하는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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