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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

'철학은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 입력 2021.11.02 11:25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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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는 철학하기를 주저하지 말 것이며, 늙은 자는 철학하기를 싫증내지 말아야 한다. 영혼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는 너무 어린 자도 너무 무르익은 자도 없다. -에피쿠로스

지금은 뷰카(VUCA)시대

야마구치 슈 지음/김윤경 옮김/다산초당/16,000원
야마구치 슈 지음/김윤경 옮김/다산초당/16,000원

뷰카(VUCA)는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
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급변하는 경제 상황과 불확실하고 모호한 경영환경을 뜻한다.
 
원래는 1990년대 미국의 육군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된 군사 용어였다. 현재의 세계 정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였으나  이제는 오늘날의 세계 상황을 잘 드러내는 말이 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뷰카 시대가 분명하다. 아니, 세상은 언제나 뷰카였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뷰카이리라.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미리 알 수 없지 않은가. 삶은 늘 변화무쌍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명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오직 죽음만이 확실한 진리일 뿐, 거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니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여정을 힘들게 보내는 것이리라. 인생이라는 고뇌의 바다를 건너며 잠시 꽃을 피우는 순간의 행복을 기다리며 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속한 우주의 역사도 확실한 것은 없다.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주장하고 있는 이론을 믿고 살 뿐이다. 그 과학적 사실마저도 수정되고 새로 발견되며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다. 우주를 향한 연구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같은 저 북극성도 과거에서 날아온 빛을 보고 있을 것이니 이미 사라진 별일지도 모른다.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서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복잡하며 변동성 많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중이다. 친구를 만나는 일도 친지를 만나는 일도 두려운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가난으로 일터에 내몰린 어린 시절보다 더 무겁고 어둡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꼼짝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인가.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과 공존하는 내 몸도 내 것일까?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으려면 아무래도 지식의 힘에 의존하는 게 빠르다. 그래서 요즘에 찾은 책은 철학이 대세다. 종교의 힘에 의지했던 지난날에는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고 살았다. 온전히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이제 그 끈을 놓고 나니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은 틈만 나면 무너진다. 나이 탓을 해보지만 나약한 핑계임을 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재독하며 철학은 '철이 들게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의 지도가 잘못되었음을 수정하게 되었으니. 철썩같이 믿고 있던 지식이 불완전함을 깨닫는 순간, 저자의 생각에 설득 당했다.
 
예를 들면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아웃라이어>를 반박한 대목에선 무릎은 쳤다. 누구나 '1만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법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적하는 글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1만 시간을 해낼 환경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것. 태생적인 환경으로 장애를 입었거나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이 1만 시간을 공들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공정한 세상 가설 -멜빈 러너
-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
 
힘든 고난 속에서도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세계관을 사회 심리학에서는 '공정한 세상 가설' 이라고 부른다.  -258쪽
 
이제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주 반대의 추정을 한다. 즉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 만큼의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므로 반대로 무언가 불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원인이 당사자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위 '피해자 비난'이라고 부르는 편견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자업자득', '인과응보', '남을 저주하면 자신에게도 재앙이 돌아온다', '뿌린 대로 거둔다.' 등 약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있다. -262쪽
한참 책을 읽던 젊은 시절 나 역시 <아웃라이어>를 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나의 제자들을 다그치곤 헀다. 누구나 1만 시간을 노력하면 크게 성공한다고! 그 책에 푹 빠져서 세상의 이면을 못 본 체 열정과 노력의 중요성을 아무런 의심 없이 주입시켰으니 그렇게 할 수 없는 환경에 좌절했을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때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에 대한 교사의 편견은 위험할 수도 있음을 이제야 깨닫지만 제자들의 성취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공정을 부르짖는 세상이지만 어차피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재능을 지니고 태어나야 공정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니 1만 시간의 법칙을 이루어 크게 성공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책이다. <아웃라이어>의 저자는 세계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만을 언급하며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시간 투자를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기계발 열풍에 편승하여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책이다. 이제 보니 그 책에는 성공신화로 가득했던 책이었다.
 
내 유년의 꿈을 추억하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불우한 가정환경은 합격했던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조차 갈 수 없게 했다. 일찍부터 학교 공부 대신 일을 해야 했으니 원하는 공부도, 하고 싶었던 성악이나 피아니스트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어찌어찌 돌고돌아 가난하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얻은 교직은 그나마 안정감을 주었으니 그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때 행복하다. 앎이 목말라 했기에 가르침의 자리가 늘 좋았다. 배움의 순간을 지나 '아하!'를 부르짖던 제자들의 모습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대한 회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틈만 나면 음악 방송을 듣고 노래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을 어찌 할 수 없다. 잠 자는 시간마저도 음악 방송을 켜 놓고 거의 모든 분야의 음악을 들으며 잔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독학으로 배워 교단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 음악 시간이었다. 합창지도를 하고 건반을 가르쳐서 음악 공개수업을 하며 대리만족을 했다. 내 반 아이들은 누구나 모든 노래를 계명창을 하게 했고, 건반을 칠 수 있게 했다. 속진하는 학생에겐 왼손 반주법까지 가르쳐서 공개수업 때 반주를 맡기기도 할만큼 열정을 쏟았다.
 
지금도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참가자들의 노래를 반복하여 들으며 감동하고 눈물을 짓곤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게 노래를 부르는 삶을 위해 1만 시간을 쏟을 기회는 없었다. 생업에 바쁜 일상이 있었을 뿐, 자식 노릇을 잘해야 했고 부모 노릇에, 착한 며느리, 성실한 아내에 이어 이젠 충실한 외할머니 역까지 줄줄이 남아 있으니 어쩌랴! 더 이상 내 꿈을 향한 젊음도, 시간도 없이 황혼을 행해 달려가고 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신석 선생님은 나의 가창력과 건반 악기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안을 하셨다. 한 달에 700원 하는 피아노 레슨 공부를 시켜 주시겠다며 그 비용의 절반을 부담해 줄 테니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피아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하신 것이다. 읍내의 큰 학교였던 장성중앙초등학교 합창부의 반주자로 쓰고 싶다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제자의 재능을 일찍 찾아주는 일은 선생님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음악 시간이면 건반 실기 평가도 제일 먼저 하고 새로운 노래를 제일 먼저 배운 나를 친구들 앞에 세우곤 하셨던 선생님 덕분에 가난하지만 행복한 유년이었다. 칭찬 받는다는 것, 누군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선생님의 제안을 내 인생에 접목시켰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전공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다달이 내야 하는 학교의 납부금을 매번 밀리던 우리 집 형편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행운이 있을 리 없었다.

이런 나에게 1만 시간의 법칙은 그야말로 화나는 법칙이 아닌가. 피아노 공부는커녕 중학교조차 갈 수 없는 내게 음악가의 꿈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난 뒤 대학을 갈 수 없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 꿈을 향한 두 번째 시도가 있었다. 꿈을 이루고 싶었던 나는 주경야독으로 합격한 검정고시에 자신감을 얻고 중등교사 자격검정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음악교사 공부를 하기 위해 강의록을 사서 공부했다. 실기는 해볼만 했으나 독학으로 화성학을 독파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말았다. 중등교사 자격검정 시험을 위해 음악 관련 강의록을 샀지만 이론이 너무 어려웠다. 학원이라도 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개인지도는 물론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이 '1만 시간'을 노력했다면 되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이론은 그저 글자나 기호의 나열이었다. 가르쳐줄 선생님도, 학교도 없었으니.
 
그때 만약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가거나 전문학원을 갈 수 있었다면 오늘의 나는 이렇게 한으로 남지 않았으리라. 결국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것으로 현실에 적응하고 말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비빌 언덕도 없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지식을 쌓아 필기 시험을 보는 것 뿐이었다. 정규 대학을 나온 이들과 겨루어 겨우 고졸 학력을 인정받아 합격했으니 그마저도 눈물나게 감사했다.
 
내 인생에 학창 시절은 초등학교로 끝났다. 만약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면 나는 1만 시간 쯤은 얼마든지 투자하여 원하는 꿈을 이루었으리라. 간절함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자기 몸의 200배를 뛸 수 있다는 벼룩도 작은 병에 오래 갇히면 작은 병의 높이밖에 뛸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그릇이 작은 병이었으니 누굴 원망하랴!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세상이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이 나라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억울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서글픈 소식은 지면을 어지럽힌다. 신문을 보는 것도 뉴스를 접하는 것도 희망보다는 절망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오래 전 법정 스님은 신문과 방송을 멀리 하라고 하셨나 보다. 스님이 아니라서 세속에 사는 나는 오늘도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본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소식 앞에 신문을 덮고 채널을 돌린다. 퇴직 후 세상과 연을 끊고 조용히 성찰하고 살다 보니 승려의 삶과 비슷해졌다.
 
이 책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잊혔던 진실 앞에 서게 했고 내 슬픈 운명 앞에 서게 해서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위로해 주었다. 1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환경도 조건도 없는 밑빠진 독이었으니 너무 슬퍼 말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인생의 목적이 성공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이제 마음을 비우고 크게 한숨을 쉬고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라고. 내 안의 상처 받은 어린 나를 그만 안아주며 위로하라고 이른다. 역시 철학 책은 '철 들게 하는 책'이 분명하다.
 
철학, 다시 일어서게 하는 삶의 무기
 
일상의 고민에서 비즈니스 전략까지,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철학적 사고법 50가지 중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라고 일갈한 앨런 케이의 직설에 꽂혔다. 그의 한 문장은 죽비가 되어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최상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나쳐 가 버린 음악 인생에 연연해 하지 않고 제2의 꿈인 좋은 글을 쓰는 일이다. 내 인생의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1만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글을 쓸 계획이다. 내 인생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최상의 동반자이자 스승인 책을 찾아 부지런히 알곡을 수확하리라.
 
이 책은 이렇게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라는 무기를 안겨 주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이 보이는 책이 좋은 책이다. 만날 때마다 다른 매력을 보이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듯. 세로토닌과 엔돌핀을 유발하는 책을 읽다 보면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은 사색하는 힘을 선사해준다. 생각하기에 따라 시련은 견디는 자에게 행운을 선물한다.  철학은 나이 든 이에게 인생의 지팡이가 분명하다.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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