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광양중학교 청미프 역사탐험대 H.I.T, 군산 답사를 다녀와서

  • 입력 2021.10.21 13:33
  • 수정 2021.10.21 16:04
  • 기자명 성재혁 홍보기자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희는 광양 중학교 역사 탐험대 H,I.T (History In Travel)입니다.

도 교육청 청소년 미래 도전 프로젝트에 선정이 되어 일제 수탈을 지역과 연결하여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보고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일어난 수탈과 탄압을 조사해 보는 역사 탐험대입니다.

근대역사박물관 앞에서 우리 팀원들과 함께
근대역사박물관 앞에서 우리 팀원들과 함께

저희의 첫 번 째 답사지는 군산입니다.

군산은 최대 미곡 생산지인 호남평야에서 들어오는 쌀을 일제가 갖은 수탈로 일본으로 빼돌리는 최대 수탈지였습니다.

지금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기 좋게 관리가 되고있는 모든 건물들이 은행, 세관, 일본인 지주의 별장이나 집이었습니다,

저희가 답사에서 본 은행 금고 위에는 '이 금고가 다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해망굴 앞에서
해망굴 앞에서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나쁜 일본 지주들에게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그 땅의 소작농이 되어 죽어라 일만 해야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에 허덕이며 지구 반대편 먼 나라까지 살 곳을 찾아 떠나야만 했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분들은 일본인들의 부를 위한 도구였습니다.

쌀을 담을 가마니가 모자랄 정도로 쌀을 일본으로 보내고 가마니 짜기 대회라는 명목으로 여섯, 일곱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까지 가마니를 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쌀을 실어 나르기 편하게 하려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산에 동굴을 뚫게 하였는데 그것이 해망굴입니다. ​

​그리고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아무 때나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시설인 ​뜬다리(부잔교)도 남아있었습니다.

이영춘가옥(일본인 농장주 구마모토의 별장)에서
이영춘가옥(일본인 농장주 구마모토의 별장)에서

​군산의 모든 도로와 시설은 단지 수탈에 눈이 먼 일본 지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일본인 지주들이 일본식 가옥을 지어 창고 가득 우리의 문화재로 채우고 일본식 절을 세워 그들의 신을 모시고 살 때 우리 조상들은 땅을 파서 흙으로 볏짚으로 움막을 짓고 살아냈던 것입니다.

또 그런 생활에서도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보탰습니다.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에서 본 금고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에서 본 금고

이렇게 어두운 역사 속으로 들어갈수록 저희들의 마음은 무겁고 힘들어졌습니다.

그 힘든 세상을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 온갖 고통 속에 살아오셨던 그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차오르고 생각도 하기 싫어집니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모른척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습니다!!!


(다음은 나주,광주의 학생 독립운동에 관한 답사입니다)

 



저작권자 © 전남교육통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