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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기

2021.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전남생물다양성교육 직무연수에 다녀와서

  • 입력 2021.09.27 09:09
  • 수정 2021.09.27 16:02
  • 기자명 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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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월,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을 천천히 걸었다. 구례 화엄사 절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정상까지 올랐으니 중학생에게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몸이 허약한 서와 희를 선두에 세웠다. 그리고 남은 90여명의 아이들은 그 두 사람을 한 줄로 이어서 뒤따라갔다. 우린 서와 희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천천히 가는 산은 나로서는 지금까지의 산행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앞만 보고 정상을 찍기 위해 숨을헉헉대며 걸었었다. 이번에는 난 아이들과 천천히 가는 산행을 즐겼다. 나무와 풀, 하늘과 바람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보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고 몸은 지치지도 않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계곡이 가파라서 땅이 코에 닿는다는 <코재>를 지날 때도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이들은 나중에 이 산을 어떻게기억할까? 산은 느리게 가는 것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이 비로소 왔다.

그런데 지난 여름 해남 땅끝에서 또 다시 숲길을 또 천천히 걸을 기회가 왔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전라남도교육청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추진단과 해남군이 공동 주최한 연수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해남에서 그것도 생태연수가 있다 하니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추가 참가자를 모집하기에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연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의 형태이다. 여행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로나 시기에 할 수 있는 귀한 대면연수였다.

두 번째 날 미황사 달마고도 길을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일행을 따라 걸으며 숲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냥 초록색 숲이 아니었다. 수종에 따라 초록의 색이 다 달랐고 마치 큰 액자 속 그림처럼 초록마다 선이 있었다. 자세히 볼 일이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숲길 입구에서 걷다 멈춰서 나무 한 그루에 꽂혀 일행은 삼십 분 이상을 머물렀다. 그 나무는 이끼와 넝쿨이 뒤덮혀 있는 흔한 나무였다. 하지만 우리를 이끌었던 선생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눈을 뜨게 했다. 우리는 그 나무에 살고 있는 여러 생명들을 함께 찾고, 나무에 붙어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동안 빠르게 지나쳤던 나무들과 그 곳에 살고 있던 생명체를 몰라본 것에 미안해했다.

 

연수를 가면 새로운 만남이 있다. 마치 먼 여행지에서처럼 이번 연수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연수를 함께 준비한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는 전국교사모임’(환생교)의 존재조차 모르고 왔는데 와서 보니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을 이미 오래전에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난 눈이 번쩍 뜨였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모여서 공부하고 있었다.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현재의 멸종 속도를 늦추고, 기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성명서를 내고, 일인시위 현수막을 들고 길 위에 섰다.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의 체제를 바꾸기 위해 그들은 올바른 정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남도자연생태연구소>의 존재도 나에게는 놀라웠다. 연구소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전라남도 어민들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하고 어민들의 친구가 되어 속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그들의 어업 방식을 지속가능한 양식업과 어업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바다 속은 버려진 어망 등 폐어구가 전체 바다 폐기물 중 46%이고 양식산업으로 인해 사료와 물고기의 배설, 밀집환경으로 인한 병균으로 수질은 오염되고 있었다. 박사님과 연구소 직원들은 현재 바다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숙소 옆 바닷가에 전복 양식을 위한 도구들이 수북히 쌓여있고 눈앞의 바다는 예전에 김양식장에서 전복 양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고장 순천에서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농업교육에 비해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낯설고 외로운 싸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의로운 싸움이었다.

나는 올해 초부터 기후에 관한 많은 강연을 듣고 책을 읽었다. 아는 만큼 보였다. 공부를 하다보니 내가 엄청난 진실들을 외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이었다. 권력주체는 기업에서 우리로 바뀌어야 한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 내가 깨달은 것처럼 어민들은 알 권리가 있고, 아이들은 지금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잡고 기른 수산물을 먹을 권리가 있다.

 

난 몇 달 전 채식을 선언했다. 우리 학교는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이하여 2021927일부터 2021101일까지 오일 동안 <기후행동주간>을 정했다. 일주일 동안 기후관련 행사가 교과융합 수업으로 또 동아리 주관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국어시간에는 학교에서 공동체 상영한 <잡식가족의 딜레마(황윤)>를 보고 내가 스톨에 갇힌 돼지가 되어 인간에게 편지쓰기 활동을 하고, 또 같은 감독의 작품 <사랑할까, 먹을까>을 읽고 반별 토론을 거쳐 학년 대항 토론을 할 예정이다. 내가 맡고 있는 <1.5C>동아리에서는 배터리 케이지 체험을 준비 중이다. 닭은 날개를 펼수도 없는 A4보다 더 작은 케이지 안에서 밀집사육되고 있다. 닭 대신 배터리 케이지에 들어가 뜬장에서 서서 버티는 체험이다. 뜬장이란 케이지의 바닥에 철조망을 깔아놓은 철조망을 말하는데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진다. 아이들은 삼겹살과 치킨을 좋아한다. 이 체험을 하고 나서 아이들이 공장이 아닌 농장에서 자란 돼지와 닭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알게 되었다. 땅속에 있는 건 무엇 하나 건들지 않으면 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지만 생태시계는 우리가 되돌릴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없다. 내가 해남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아이들과 깊은 산을 느리게 걸으면서, 또 전국의 기후전사들을 만나면서 나는 눈뜨고 깨어난다. 남도의 땅 해남은 풍요로웠고 밤을 새며 이야기했던 밤바다는 거울처럼 별빛을 머금었다. 이 행성은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멈추어 서서 아이들과 함께 더 이상 파괴하지 말라는 자연과 무수한 생명들의 외침을 들을 것이다. 서서히, 그리고 끝까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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