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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의 영원한 제비 새끼이다.

바람 때문에 나무가 탄식하다.

  • 입력 2021.05.10 11:23
  • 수정 2021.05.10 14:36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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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사랑도 있지만 치사랑도 있다.
내리 사랑도 있지만 치사랑도 있다.

"쟁반 가운데에 놓인 감이 먹음직스럽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도 가슴에 품은직 하다마는 그것을 드실 부모님이 계시지 아니하므로 그것이 서러울 뿐이노라."

박인로의 조홍시가이다. 이 시조를 접할 때마다 몇 년 전에 부모님과 함께 했던 만찬(晩餐)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늘 현재형이다.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분이라 자식에게 배불리 먹이는 것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께 주말에 고향에 가겠다는 소식을 전하면 며칠 전부터 아들 먹일 음식 준비에 바빴다.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분이라 그런지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날도 어머니의 정성과 나의 마음이 만나는 날이었다. 각종 채소와 삼겹살, 생선회의 조합이랄까. 어머니께서는 밭에서 직접 키운 상추, 깻잎, 고추, 양파, 마늘, 두릅 등 각종 야채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오셨다. 나 또한 부모님 생각에 삼겹살과 해산물 및 회를 촘촘히 챙겨와 먹거리 마당을 펼쳤다. 마침내 부자가 서로에게 한입 쌈을 권하는 숭고한 장면이 전개되었다.

부자가 비록 소찬(素餐) 앞에 앉았지만, 서로가 마음으로 준비한 음식이기에 한 쌈 한 쌈이 대찬(大餐)이었다. 드디어 쌈이 시작되었다. 각자 한 쌈 한 쌈하면서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특별 안주로 곁들였다.

저는 부모님의 영원한 제비 새끼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영원한 제비 새끼입니다.

어느새 어머니의 손에 들린 한 쌈이 나의 입으로 향했다. 그것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성 깃든 한 쌈이었다. 오십을 넘어선 나는 잠시 주춤거렸다. 다 큰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입을 짝 벌리며 받아먹었다. 마치 제비 새끼처럼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영원한 제비 새끼였다. 당신이 주신 한 쌈을 언제까지 받아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정하게 한 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이 고마웠다.

잠시 뒤에 어머니의 한 쌈이 아버지를 향했다. 아버지께서는 야단이셨다. 채신머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아버지께 드시라고 권했다. 마지못해 받아 드셨지만, 마음으로는 기뻐하였으리라.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당신만의 여인이자 나의 어머니께서 그것도 다 큰 아들 앞에서 당신에게 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온몸이 행복으로 꿈틀거렸다.

이렇게 5년 전에 부모와 아들이 서로를 큰 손님으로 대하며 행복한 쌈을 나누었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렇지만 한 쌈의 만찬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왠지 맑은 눈물 한 방울이 쌈 속으로 서럽게 떨어진다.
왠지 맑은 눈물 한 방울이 쌈 속으로 서럽게 떨어진다.

종종 어머니랑 쌈을 할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스멀스멀 쌈 속으로 스며든다. 지금도 쌈의 맛은 변함이 없지만, 왠지 맑은 눈물 한 방울이 쌈 속으로 서럽게 떨어진다.

"밥상 위에 놓인 음식이 맛있게도 보이는구나. 진수성찬(珍羞盛饌)은 아닐지라도 아버지와 쌈의 향연을 열고 싶지만은 멀리 떠나신 당신을 그리며 맑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 뿐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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