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체면이여! 이젠 안녕.

체면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자율권을 강탈했죠.

  • 입력 2021.03.24 10:20
  • 수정 2021.03.24 18:10
  • 기자명 김광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냥 믿지 마세요. 믿지 말고 시도해보세요(Don't believe it. But test it)
그냥 믿지 마세요. 믿지 말고 시도해보세요(Don't believe it. But test it)

Y양의 말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 아무도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았어요. 세상은 질문도 없고 대답도 없는 온통 멍텅구리 체면과 고정관념이 종일 배회를 하고 있었죠. 이젠 그들을 보내야 합니다."

우린 종종 '체면이 밥 먹여 주냐'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만큼 우리 주위에는 체면(體面)이란 이름으로 사는 이들이 많다.

'체면'이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자세나 얼굴을 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을 하였을 때에는 '체면이 깎였다'라고 하고, 다른 사람이 만족할 만한 일을 하였을 경우에는 '체면을 차렸다'라고 한다.

흔히 "이거 참, 아버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군, 고위공직자 체면에 소형차를 탈 수 있나"처럼 체면이라는 단어는 나보다는 남을 먼저 의식하는 묘한 어감을 내포하고 있다.

왜 자신에게 떳떳하고 당당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할까? 그런 삶을 사는 Y양이 오늘따라 측은하기만 하다.

왜 Y양이 P회사를 떠나면 경제적으로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리 급히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했던가를. 잠시 Y양의 만나보자.

Y양은 노동자의 외동딸로 키는 큰 편이며 조금 마른 체격이지만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Y양은 줄곧 학교에서 일등을 했으며 한 번도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시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입사하여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동안 의미 있는 나날을 보내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 체면 외투를 벗어 던지고 나니 가슴이 뻥 뚫렸어요.
그 체면 외투를 벗어 던지고 나니 가슴이 뻥 뚫렸어요.

그런 Y양에게 급발진 삶이 일어났다. 무슨 일 때문인지 갑자기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활약하면서 신실(信實)한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

혹 Y양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적이고 도도한 그녀가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에서 화려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삶이 너무 짧았다. 업무상 많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다. 그 마음의 상처가 쌓이고 쌓여 순수한 마음에 주름이 생겼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콘크리트 건물 밖으로 달아났다. 무정하게도 장대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우산도 없으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마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Y양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아. 특히 남을 의식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칼날 그 자체였어. 동안 투명한 우산을 다른 사람만 씌워주고 자신은 항상 비를 맞고 있었던 거야. 줄곧 비를 맞은 바보였어. 이제야 알았어. 결코 삶은 모든 사람을 투명한 우산으로 씌울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이제라도 조그마한 나만의 우산을 펴자. 그리고 체면 따위는 버리자. 체면이여! 이젠 안녕."

오 멋쟁이 Y양이여! 마침내 당신은 체면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 며칠 전 Y양을 만나보니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허브차를 마시다가 잠시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 우리 사회에서 솔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이었다. 아니 저였어요. 지금껏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의식 구조가 바로 체면이라는 칠삭둥이를 낳았어요.

학교에 다닐 때에 성공의 역까지 가기 위해서 노력 열차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았어요. 입사 후에는 성과와 승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삶은 저도 모르게 오그라들었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났어요. 이게 사는 것일까? 회사 일은 재미가 없었지만, 충분히 금전적인 보상을 해 주었죠. 그렇게 고민하며 짜증스러운 나날을 보냈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짐이 되었죠. 그게 바로 체면이라는 이상한 관념이었어요. 체면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자율권을 강탈했죠. 용기 내어 '장녀, 명문대 출신, 일류기업 사원' 등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사회적 외투를 벗어 버렸죠. 그 체면 외투를 벗어 던지고 나니 가슴이 뻥 뚫렸어요.

체면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자율권을 강탈했죠.
체면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자율권을 강탈했죠.

지금은 맨살에 부딪히는 바람을 맞으며 살랑살랑 살고 있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하고 여유로워요.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죠. 모르겠죠."

Y양은 남은 허브차를 마시고 봄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장이 있었다. "그냥 믿지 마세요. 믿지 말고 시도해보세요(Don't believe it. But test it)."



저작권자 © 전남교육통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