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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죽어야만 끝이 난다.

삶의 현장에는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

  • 입력 2021.03.05 12:46
  • 수정 2021.03.06 04:33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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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지금부터라도 삶의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지금부터라도 삶의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무엇일까? ‘당신 아들 공부 잘한다면서요. 커서 의사나 검사되겠네요. 당신이 부럽네요. 당신은 든든한 종신보험 넣어두었으니까요.’

기성세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 ‘당신 아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지금은 아니라면서요. 뭐가 문제일까요? 옆집 길동이는 갈수록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 갈 예정이라는데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불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명문대를 신(神) 모시듯 한다. 명문대 졸업장은 바로 능력의 증표이며 황금빛 숫자를 잡을 수 있는 보증수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가 그들에게 승리자와 출세자라는 훈장을 달아주며 인생이 끝난 것처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래 오직 혼자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했지. 다른 사람들 잠자고 놀 때 나는 쉬지 않고 공부만 했어.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있겠어. 그래 이젠 특별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한편에서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사람들은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나를 멍청이라고 불러. 사실,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밖에 나가서 노는 게 정말 좋아. 축구, 농구, 배드민턴을 할 때면 기분이 매우 좋아. 이렇게 운동만 좋아하면 정말 멍청한 어른이 될까?”

이 또한 주위에서 많이 들었던 넋두리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지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면 될 것 같고 운동이나 예능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그 방향으로 나가 직업을 가지면 될 것 같은데 기성세대는 뭐가 문제가 된다고 그렇게 야단인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명문대 타령을 할 것이며 언제까지 출세 타령만 할 것인가?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들의 사고방식은 19세기에 머물러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기성세대여! 우리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옛것에 새것을 더해보자.
기성세대여! 우리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옛것에 새것을 더해보자.

 

 

 

지금부터 기성세대는 삶의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옛날에 배웠던 지식은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하고 지금부터라도 책을 가까이하며 삶을 해석해야 한다. 때때로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오거나 연극이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세상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더 나가 평생교육기관에 틈틈이 나가서 살아 숨 쉬는 지식을 배우며 삶의 지혜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즉 새로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배움과 혁신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시대 흐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헌 부대는 찍기고 새 것은 반드시 새어나가 버리고 만다.

이쯤에서 공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다. 흔히 공부라고 하면 학문을 배워 익히는 일 모두를 말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오로지 제도교육 안에서 배우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로 한정되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제도권 교육만 마치면 마치 공부가 끝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 공부의 어원을 알고 나면 교육을 광범위하게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공부는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주공부(做工夫)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공부란‘불도(佛道)를 열심히 닦는다’는 뜻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공부는 참선(參禪)에 진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에서 공부(工夫)에 관한 기록은 선어록(禪語錄)에 많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공부는 간절하게 해야 하며, 공부할 땐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공부할 땐 오로지 앉으나 서나 의심하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바로 매일 접해야 하는 삶의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공부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삶의 물결 속에서 정답 아닌 가능성 있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은 간절해야 하고 생각은 넓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공부를 몸과 마음에 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삶은 정답 없는 오답투성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단순한 지식으로는 심오한 인생을 범접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학교를 졸업했다고 할지라도 서 있는 곳곳에서 새롭게 늘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른바‘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아야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는 공자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린 지금까지 옛것만을 학교에서 쉼 없이 줄곧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졸업 후 모든 것을 다 배운 것처럼 착각하고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버린다.

 

 

학교에서 배웠던 단순한 지식으로는 심오한 인생을 범접할 수 없다.
학교에서 배웠던 단순한 지식으로는 심오한 인생을 범접할 수 없다.

 

 

이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타인과 더불어 백세시대를 아름답게 그려나갈 수가 있다. 언제까지 옛것으로 현재와 미래를 만날 것인가?

기성세대여! 우리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옛것에 새것을 더해보자. 매일 매일 공부하여 얻은 따끈한 지식으로 젊은 세대와 인생을 이야기하며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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