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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동생같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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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동생같은 형
  • 최은경
  • 승인 2021.02.22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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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첫만남

내가 형을 처음 본 곳은 아동센터였다. 형은 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안보이면 로비에서 혼자 주머니에 손 넣고 있다 휑 가버렸다. 또 어떤 날은 선생님 앞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다 아기처럼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였다.

그날도 형은 한바탕 악을 쓰고는 센터 밖으로 나가버렸다. 선생님이 형의 뒤를 따랐다. 나도 선생님 뒤를 따랐다. 계단을 내려왔을 때 형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요한아, 요한아."

선생님이 형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나는 위쪽 길을, 선생님은 아래쪽 길을 맡았다.

"안보여요."

내가 선생님 곁으로 다가왔을 때, 선생님은 입술 위로 손가락을 얹고 입구를 가리켰다. 센터 계단 입구에 형이 숨어 있었다. 다 큰 형이 쭈그린 채로 말이다. 내가 다가가서 말했다.

"다보여, !"

", 관심 꺼주세요. 나는 필요없는 애니까. 찌질이니까.“

형인데 내게 존댓말을 썼다. 선생님이 형한테 어서 센터로 들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형은 고집을 피웠다.

, 전화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니가 안 오니까 그랬지.”

,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분명히 그랬잖아요.”

니가 하도 안 오니까 그랬지.

, 그래도 하지 말았어야죠. ··· 생각한다면.”

“······”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형은 대뜸 내일 오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자기를 생각해주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공부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형은 긴 다리로 겅중겅중 길을 건너고 있었다.

', 저런 형이 다 있지!'

형이 신기했다. 나 같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내가 저랬다면 엄마한테 개박살이 났을 것이다. 언젠가 아빠 핸드폰 액정이 그랬듯이.

 

 

 

2. 두번째 만남

형을 다시 만난 건 센터 차 안이었다. 수요일이면 우리는 차문 앞에서 치열한 앞자리 경쟁을 벌였다. 선생님이랑 등산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일치감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형이 대뜸 앞자리 조수석에 앉으려고 나를 제치고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나는 화가 나서 팔꿈치로 형의 배를 쳐 버렸다. 그때 형이 아기 목소리로 앙앙 울었다. 형이, 다섯 살 아이처럼 울어댔다. 선생님이 달려와 왜 우냐고 물었다. 형은 계속 앙앙거렸고 말도 더듬었다. 영문을 모르는 선생님은 나한테 차에서 내리라고 하였다. 나는 얌전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이게 다 저 찌질한 형 때문이었다. 난 화가 나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느새 보조석 등받이를 세웠다.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말하였다.

이필승, 요한형이랑 같이 앉아!”

정말 개짜증이었다. 형이면 형답게 굴어야지. 어렸을 때부터 의젓하게 구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도착할 때까지 형과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차가 주차장에 멈췄을 때 나는 잽싸게 내려버렸다. 그리고 뒷자리에서 내린 아이들과 함께 익숙한 등산로를 향해 달렸다. 그때 등 뒤에서 또 유치원생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자기만 빼놓고 간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우리들 이름을 불러댔다. 우리는 멈춰서야 했다. 정말 한숨이 나오는 형이었다.

같이 산을 오를 때 형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유리 선생님 옆에 딱붙어서 재잘거렸다. 그러면서 수영이누나가 자기 뒤를 따라가기라도 하면 저리가라!” 며 쫓았다. 수영이 누나는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조금 이상하다. 혀 짧은 소리가 나기도 하고, 약간 옆으로 걷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대놓고 수영이 누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은 수영이누나한테 대놓고 말해버린다.

너 마, 말 좀 그만해. 목소리 짜증난단 말이야.”

다행히 착한 수영이 누나는 바로 입을 다문다.

, 말을 안하면 답답하고, 말을 하면 나쁜 사람 되고. 그래서 가슴이 터질 것같아요.” 내가 선생님한테 잠바를 맡기러 왔을 때도 형은 수영이누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하고 나니 시원하니?”

, , 근데, 걔한테 미안해서 또 불편해요. 아유, 미치겠네.”

내가 끼어들었다.

형은 수영이누나보다 백배 더 불편하거든.”

, 뭐야? 욕이 나와야 하는데, 신기하게 산에 오니까 욕이 안 나오네.”

그럼, 날 잡아보시든지. 메롱!”

내가 토끼처럼 재빨리 산을 오를 때 형은 겅중겅중 꺽다리처럼 나를 쫓아왔다. 약오르지롱. 골려 먹으며 달렸어도 형은 나를 잡지 못했다.

드디어 다리 밑 계곡에 도착했다. 우리는 지난번처럼 얼어붙은 고드름덩이를 돌로 떼내며 놀았다. 요한 형은 얼음조각가처럼 고드름을 조심조심 떼냈다. 수영이 누나는 왕고드름을 깨서 먹기도 했다. 나는 호성이랑 하람이랑 고드름 싸움을 했다. 그렇게 한창 재밌게 놀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겨울은 해가 짧다고 서둘러 내려가자고 했다.

아아앙

요한 형이 길길이 날뛰었다. 계곡 쪽으로 안내려가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또 억지부리는 형의 유치원생같은 울음소리를 들어야했다. 하람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앙앙앙, , 다리 아픈데, 왜 편한 길로 안가냐고요.”

아무도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빨리 내려가기를 바랐다. 차도 다닐 수 있는 평평한 길로 내려가자면 시간이 배로 걸린다. 그래도 형은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징징거렸다. 결국 우리는 두 패로 나누어 가기로 했다. 아무도 요한 형 쪽을 택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요한 형과 같이 가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쪽이 선생님 차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수영이 누나만 요한 형을 따라갔다. 그때 형이 말했다.
, 얘도 쓸모가 다 있네. 수영이한테 잘해주어야겠어. 아까는 미안했어.”

형은 앞에 누가 있어도 속엣말을 해버린다. 이래서 형과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없는 거다. 착한 수영이 누나였기 망정이지. 만약 우리 엄마한테 걸렸으면 형은 뺨 한 대는 거뜬히 맞았을 거다. 물론 우리는 형 덕분에 해질 때까지 주차장에서 신나게 놀 수 있었지만 말이다.

 

3.아쉬운 만남

언제부터였지? 형이 두 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별일이었다. 산에 간 게 좋았나? 그러나 교실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로비에 있는 둥그런 테이블에 쭉 혼자 앉아 있었다. 가끔 동생들이 형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형은 손바닥을 치켜들며 심판처럼 말했다.

, 가주실래요.”

이 한 마디면 아이들은 뒤돌아섰다. 누구도 쉽사리 형한테 다가가지 못했다. 형은 로비에서 선생님과 일대일로 공부했다. 수학이나 국어를 아주 조금만 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늦게 와놓고 훨씬 빨리 사라졌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은 로비에 아주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교실 창문을 얼쩡거리기도 했다. 가끔 형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는 그때 엄지손가락 두 개를 바닥으로 내리고 다같이 우우우해주었다. 결코 곁을 주지 않는 형에 대한 우리의 복수였다.

형은 무안했는지 물러서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종이비행기를 접어 교실 창문으로 날렸다. 교실은 먼저 종이비행기를 잡고 싶은 아이들로 난리가 났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먼저 주운 호성이에게 아이들이 소리쳤다.

뭐라고 써 있나 봐!”

빨리 읽어 봐!”

아이들이 재촉했다. 호성이가 종이에 써진 글자를 읽었다.

짜증, 짜증, 왕짜증, 왕왕짜증, 개짜증

우리는 1초도 참을 수 없었다. 종이! 종이! 우리도 종이를 찾았고, 더 센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 받아라

교실문이 열리고 우리의 종이비행기가 요한 형을 향해 날아갔다.

니가 더 왕짜증, 왕왕짜증, 개개개짜증,”

우리는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형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제 형이 어떻게 복수할까가 기대됐다. 형은 얼마나 더 센 말을 찾아 우리에게 돌려줄까. 우리는 기대하고 또 기대하였다. 그런데 형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다닥 무언가를 갈겨쓰고는 종이를 휴지처럼 구겼다. 그리고 구긴 종이를 교실 안으로 가볍게 던지고 센터를 나가버렸다. 하람이가 후다닥 종이를 주웠다.

뭐라고 썼어?”

빨리 읽어봐!”

아이들이 재촉했다. 하람이는 구겨진 종이를 천천히 폈다.

항복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형은 줄행랑을 친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에이!”

재밌었는데···”

그날부터였을까. 우리는 이제 요한 형을 기다리게 되었다. 형이 있는 로비의 둥그런 테이블에 함께 앉는 아이도 생겼다. 스스럼없이 형에게 말을 거는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형 옆에는 절대 오래 붙어 있으면 안 되었다.

, 인제, 저리가!”

적당한 때 빠지지 않으면 이런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4.기다려지는 만남

겨울방학이 끝났다. 이제 네 시가 가까워오면 아이들은 창가로 몰려들었다. 선생님이 여러 번 주의를 줬어도 소용없었다. 결국 선생님은 우리에게 10분 자유 시간을 주었다. 아무리 창밖을 내다봐도 형이 안나타면 하람이가 형 집으로 뛰어갔다. 센터 건너편 이층에 요한 형이 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저기, 온다!”

형이 자전거를 끌고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형 아빠가 선물해준 자전거래.”

하람이가 말했다.

애걔걔, 돈이 부족했나? 선물인데 낡았다.”

내가 말했다.

잘 타면 새 거 사준다 했대.”

또 하람이가 말했다.

형이 센터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나는 형한테 교실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형이 순순히 교실을 들어왔다.

, 집이 코 앞인데 자전거는 왜 끌고 와?”

, 자전거 운동시키는 거야.”

형이 운동하려는 거 아니고?”

, 바퀴 굴려주니까 자전거가 좋아하잖아.”

우리한테는 불친절한 형이 자전거 얘기할 때는 다정했다. 나는 자전거한테 살짝 질투가 났다.

형은 어째 사람보다 물건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 . , 맞아. 정말 그래. , 오랜만에 옳은 말 한다.”

요한 형은 나를 물건처럼 쓰담쓰담 해주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물건은 말도 못하잖아. 사람이 더 좋지 않아?”

하람이가 물었다.

, 난 이제까지 조,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끔씩 내 상상을 넘어선다.

난 엄마 품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호성이가 말했다.

, 난 아직 어, 엄마를 용서하지 않았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요한 형 입에서 12금 같은 말이 나왔다.

엄마가 형 때렸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 정도는 용서할 꺼리도 못돼.”

, 그 정도라니. 나한텐 전부인데··· 나는 형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애기 때부터 맞았다구. 밥알만 흘려도 맞았다구. 애긴데도 엄마가 안봐줬다구. 형은 숟가락으로 머리통 맞아봤어?”

나는 눈물담긴 눈을 부릅뜨고 형을 노려보았다.

, 임마 그건 아동학대야. , 신고하면 끝나는 일이야.”

애기가 어떻게 신고를 해? 들키면 바로 쫓겨난다구!”

, 임마, 그건, , 해봐야 아는 거지. 난 안쫓겨났단 말이야.”

형 엄마랑 내 엄마는 다르단 말이야. 어엉엉.”

, 맞은 건 아무 것도 아냐. , ··· 엄마가 안···아아앙.”

?”

눈물이 쏙 들어갔다.

, 난 필요없는 자식이라고···아아앙.”

형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또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안 어쨌다구?”

하람이가 계속 말해달라고 재촉했다.

, 난 필요없는 자식이라고··· 앙앙앙.”

아니, 백 번 들은 그 말 말고!”

, 난 쓸모없는 놈이니까. 찌질이니까. 앙앙앙.”

하람이가 계속 졸라댔지만 형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큰소리로 앙앙 울 뿐이었다. 그때 형 울음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왜 자꾸 우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나는 따라 울었다. 교실은 울음 대결을 펼치는 오뉴월 개구리 소굴처럼 시끄러웠다. 선생님은 뭐라 하지 않았다. 하람이도 귀를 막지 않았다. 나는 우는 일이 이렇게 상쾌한 줄 몰랐다.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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