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이상인
뒷산에 오르다가 팻말 따라 간
배추밭, 몸통들은 다 팔려가고
입다가 벗어놓은 헤지고 찢긴 겉옷만
즐비하게 널려 있다.
주섬주섬 주워 모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근처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시래기 쳐다보듯 한다.
끈으로 엮어 뒷베란다에 매달고
시들시들 마르길 기다린다.
김장배추로 맛있는 김치가 되지 못한 것들
대롱대롱 매달려
문 열면 파리한 모습으로
서걱서걱 삶을 서걱댄다.
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 만든
가쁜 숨결, 푹 우러나온 시래기국
밥 한 그릇 거뜬히 말아먹고 나니
그동안 그네들이 즐겁게 맞았던 빗방울들이
내 콧잔등에 송송 맺힌다.
작가 소개 / 이상인
- 전남 담양 출생. 광주교육대힉교 졸업.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당선. 2020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동시집 『민들레 편지』
- 제5회 송순문학상, 우송문학상 수상. 진상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