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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코드를 찾아서

코로나 시대, 무엇을 빼야 할까

  • 입력 2021.01.05 10:19
  • 수정 2021.01.05 17:29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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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했던 말이다. 뼈아프게 들어야 할 충고가 분명하다. 미래학자의 예견이 잘못 되었다고 반박할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유행어가 된지 여러 해가 지났다. 요즈음은 이과도 그렇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애초부터 학문의 벽을 쌓는 게 아니었다. 다시 통섭과 융합이 대세를 이루는 요즈음이다. 마치 인간의 몸을 정신과 육체로 분리할 수 없듯 학문의 영역도 그 전문성은 인정하되 억지로 벽을 쌓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빼기의 법칙/오정욱 지음/청년정신
빼기의 법칙/오정욱 지음/청년정신

이 책의 저자는 더하기에 힘쓰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빼기에 힘쓰라고 조언한다. 선택과 집중을 말함이리라. 학교에서 전 과목을 가르쳤던 나로서는 그의 지적이 어리둥절했다. 인성 교육에 도덕성 교육, 각종 교과 교육에 특기와 재능을 발견해주려고 시도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모두 더하기에 집중하는 교육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제자들이 어느 한 과목이나 분야에 재능을 보인다고해서 다른 영역을 소홀히 하라고 가르칠 수 없었다. 초등교육은 보통교육이니 더하기 교육이 맞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주당 20시간의 정규수업 후 이어지는 440분까지 방과 후 교실에 바치는 시간을 합하면 토플러가 말한 하루 8시간(40분 단위를 한 시간으로) 이상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기초 학문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펼치는 논리에 수긍이 가는 대목을 되새겨 우리 교육에 접목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리를 모르면 카피하고 따라 하기에 급급해져 성장에 반드시 한계가 온다. 첨단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기초 학문인 물리나 수학을 중요시 한다. -11

인문학과 철학을 모르더라도 당장 경제생활을 하거나 직업을 구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세상을 통찰하는 원리를 깨우쳐 줄 수 있는 기초 학문을 공부하지 않으면 정착화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는 생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12

국어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수학을 잘하기는 어렵다. 이제 수학은 단순 계산을 넘어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문제해결력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수학 교과에 머무르지 않고 교과 전반으로 일반화 되어 전이된다.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과학을 잘 하기는 힘들다. 독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데 사회과학을 잘 할 리도 없다. 더 나아가 국어 실력이 없는데 영어 지문을 읽고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기도 어렵다.

이는 우리 교육이 다시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다. 독서력을 키우는 일, 수학이나 기초과학에 공을 들이는 일은 통섭과 융합의 시대를 향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이 활성화 되어야 하고 과학실이 현대화되어 어린 꼬마 과학자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적으로 과정을 중시하는 배움이 교육의 기본으로 자리 잡아야 튼튼한 학문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더불어 인간다운 인생의 집도 훌륭하게 지을 수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생각하는 교육을

그동안 쉼표 없는, 마침표가 연속된 삶을 살아왔다면 쉼표를 군데군데 심어 놓고, 때로는 마침표 대신 느낌표를 던져보라. -12

문제의 푸는 사람은 주어진 세상을 살고, 문제를 내는 사람은 주어질 세상을 산다. 인생은 마음가짐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선택을 당할 것인가? 생각은 에너지다. 생각을 포기하면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끌려 다닌다. -61

우리나라를 이끌어 온 공교육은 공장식 교육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프러시아 교육을 받아들인 미국식 교육이 이 나라의 밭에 옮겨 심어진 교육방식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코 성장 중심, 개발 중심, 물량 중심 교육이었고 주입식 대량생산을 위한 교육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효율성이 높은 교육 방식이었지만 이젠 그 폐해가 나타나는 중이다. 인간보다는 물질이, 상생보다는 경쟁이 주를 이룬 시대의 산물이 남긴 상처는 지금 세상을 할퀴며 지나는 중이다. 그 폐해는 갑질 문화를 낳았고 미투 운동으로 빙산의 일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교육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녔음을 가르쳐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초고속으로 달린 결과는 인간 소외를 가져 왔음을 반성하고 자각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배고픔의 언덕에서 올바른 가치는 뒤로 하고 살아남기 위해 내 발 밑에 누가 밟혔는지도 모른 채 달려온 질주를 멈추고 생각하는 교육, 무엇이 옳은지 살펴보고 걷게 하는 교육이 절실한 가치로 등장해야 한다.

내가 달리는 방향이 옳은지,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지, 어디쯤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먼저 살피는 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인간이 AI와 다른 점은 딱 하나 뿐이다. 시킨 대로 행하는 기계가 아닌, 생각하고 판단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는 점!

그동안 우리는 빠른 성장을 위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교육을 해왔다. 질문하고 묻고 따지는 일은 생략했다. 속도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주입식, 객관식 교육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인문학은 죽었고 생각이 없는 단순지식인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육제도가 몰지각한 인간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생각 없는 그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어 온갖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갑질을 일삼으면서도 잘못인 줄도 모르고 상처 입히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그들은 상류 사회를 지배하며 물질과 부의 노예가 되어 세상을 쥐락펴락 주물러왔다. 턱을 치켜세우며 온갖 추태를 부리며 살아도 눈을 감아주는 세상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도 모자라 그들처럼 되지 못함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이제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불고 있는 바람직한 변화의 물결이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앞장 서야 할 시점이다. 특히 교육 제도가 사회 환경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임을 생각하여 국가의 교육제도를 재정비하여 이성과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탄탄한 버팀목을 제공해야 한다.

자라나는 학생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자부심을 갖고 달릴 수 있도록 발에 맞는 신발을 신겨 줄 수 있는 제도로 믿음을 줘야 할 것이다. 제대로 빨리 달리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어떤 제도로 뒷받침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미로 앞에서 어떤 짐을 빼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코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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