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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가 낳은 뜻밖의 선물

  • 입력 2020.11.30 16:50
  • 수정 2020.12.01 10:44
  • 기자명 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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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유아교육진흥원에 오시죠? 명단에서 교장 선생님 성함을 보고 나도 추가로 신청하려고 합니다. 같이 점심 먹고 함께 연수에 참여하면 될 것 같은데……작년 4월에 순천 OO초 교장에게 걸려 온 전화다.

재작년 2월에도 전화가 왔다. 십수년 전에 OO분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뜬금없기도 했지만 오래 전 일로 같이 밥을 먹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순천 갈 일이 있으면 교장실에 들러 차나 한잔하면 좋겠다고 에둘러 거절했다.

그랬는데 또 전화가 온 것이다. 두 번이나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 진심이 느껴졌기에 반승낙을 했다. “제가 베푼 친절은 당연한 것인데 점심이라니요? 설령 점심을 먹더라도 국밥 한 그릇으로 충분합니다.” 점심 메뉴로 옥신각신한 끝에 낙지 요리를 잘하는 집이 있다며 비빔밥을 예약해 놓겠다고 했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연수가 있는 날 순천으로 향하며 예전 학교의 전경과 아이들, 그곳에서의 생활을 활동사진처럼 떠올렸다. OO읍에서 승용차로 20분쯤 걸리는 작은 포구에서 분교가 있는 섬이 눈앞에 보인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선외기라는 빠른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5분쯤 가면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면 학교가 나오는데 높은 곳에 있어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그림 같다.

옆에 있는 섬이 바다를 에워싸고 있어 바다는 평화로운 호수 그 자체다. 썰물에는 뻘배를 타고 다니며 갯일을 하는 아낙네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총 7명이었는데 나는 1학년 한 명과 6학년 두 명을, 연세 지긋한 이선생님은 3·4학년 4명을 맡고 있었다. 집이 20채도 안 되는 작은 섬이라 사람 수도 적었다. 학교 건물이라고 해야 고작 교실 두 칸과 관사 한 동, 그리고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전부다. 운동장은 가정집 마당 두세 개를 합쳐 놓은 크기다.

그렇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평온하고 행복했다. 업무도 거의 없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만 충실하면 된다. 일과 시간에는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 삼아 섬을 한 바퀴 돌거나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다행히 함께 사는 선생님과 뜻이 맞아 봄에는 취나물을 뜯고, 가을에는 밤을 줍는 날도 많았다.

섬에는 중학교가 없기 때문에 졸업하면 떠나야 한다. 6학년 두 명 중에서 한 명은 OO읍으로, 다른 아이는 순천에 있는 중학교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동생들도 함께 간다는 것이었다. 남은 아이 셋 중에서 다른 형제까지도 전학을 간다고 하니 오갈 데 없는 아이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분도 전근을 가야 할 상황이었다. 과연 어떤 선생님이 와서 남은 아이 한 명을 맡을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2월에 교육청 인사 발표가 있고 난 다음 바로 본교에서는 분교에 근무할 교사 발령을 내는데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은 뜻밖에 순천에서 오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섬 생활은 남자들도 힘든데 여자 혼자서 어떻게 근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 여선생님의 안전과 생활의 불편이 염려되어 장문의 편지를 써 놓았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내용은 섬 생활에서 어려운 점과 주의할 점,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생활하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편지 말미에 내 전화번호도 메모해 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나서 안 사실이지만 걱정하는 마음을 담은 내 전화도 받았다고 했다.

연수 날 설레는 마음으로 운전을 하니 금세 순천에 도착했다. OO초등학교는 순천의 구도심에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 교장실에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자 손님 한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교감 시절 병설유치원 원감이란다. 이 분도 관리자교육 연수에 참여하는데 둘만의 식사 자리가 어색할 것 같아 초대했단다.

식당은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었다. 가는 도중 도심 이곳저곳에 볼거리들이 많았다. 잘 단장된 거리와 예쁜 건물, 고즈넉한 한옥, 멋진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면 좋겠다고 하니 진행 중이란다. 음식점은 인사동이란 한식 전문 식당이었는데 손님이 많았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낚지 비빔밥이 아니라 굴비정식이다. 전화로 얘기할 때와 다르다고 하니 웃으면서 그 음식점은 다른 곳에 있단다. 아마도 초대 음식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성동초 교장 선생님은 내가 먹기 좋게 고깃살을 발라 자꾸 내 쪽으로 내밀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섬 생활의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특히, 내가 너무나 고마워 지금껏 잊을 수가 없었단다. 교장이 된 후에도 그때를 생각해서 학교 관사 생활을 하는 여선생님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배려가 낳은 선한 영향력이라고나 할까.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사실 이 분은 40년 가까이 되는 긴 교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교사 생활을 되돌아보니 고마운 사람이 많았단다. 그 중에서도 멋모르고 들어간 섬에서 얼굴도 모르는 전임자가 남긴 마음을 잊을 수 없어 한 번쯤은 인사를 드리고 싶었단다. 학생 한 명, 교사 한 명인 생활이었으나 중간에 자신의 자녀를 전학시켜 함께 공부하게 했고, 동화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하였다. 그 당시 가까운 섬에서 근무했던 교사를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열정과 진성성에 감동스러웠다. 이런 분은 흔치 않으리라!

사실 배려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들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교장으로 승진한 첫 해에 경주에서 행복한 학교 만들기연수가 있었다. 23일 동안이었는데 숙소는 11실이었다. 둘째 날 저녁에 숙소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접시에 먹음직스런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호텔은 서비스가 좋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 강의가 시작되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과일 얘기를 했더니 모두 의아해했다. 그런 사실이 없었단다. 순간 어젯밤 그 과일은 배려가 낳은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쓴 방이었지만 청소하는 사람을 생각하여 이불을 정리하고, 목욕탕 안의 물기가 하나도 없게 닦아 놓고, 쓰고 난 수건도 개어서 한 쪽에 정리해 두었다. 모든 것을 사용하기 전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방을 나섰다. 아마도 청소하는 분에게는 내가 특별한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과일 선물을 받아야 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동료들의 얘기를 듣고 특별한 대접을 받아 기분이 아주 좋았지만 그런 줄 알았으면 팁이라도 놓고 방을 나올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셋이서 점심을 먹고 학교 근처에서 커피까지 마셨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연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웠다. 연수 장소로 떠나려는데 교장실에서 종이 가방에 담은 선물을 가지고 나왔다. 집에 와서 열어 보니 순천의 유명한 빵집에서 만든 찹쌀떡과 죽녹차, 연잎차, 우엉차가 들어 있었다. 18년 전에 있었던 작은 배려를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선물까지 챙겨 주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런 은혜를 잊지 않고, 인연을 이어 가는 모습에서 인품이 엿보였다. 식사 대접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으러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던가? ,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분처럼 나도 그분의 가르침을 쉬 잊지 못할 것 같다. 교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오면 나도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꼭 인사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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