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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내소사 꽃살문 / 이상인

  • 입력 2020.10.30 14:31
  • 수정 2020.11.13 15:35
  • 기자명 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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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꽃살문

이상인

 

이번 겨울 한 철에는

내소사 꽃살문에서 나고 싶다.

솟을 모란꽃살문 띠살문에 끼어들어

대웅보전 문틈에 꼼지락거리는

맑고 가벼워진 햇살이나 세어보며.

 

몇 편의 눈보라를 이끌고

멀대같이 서 있는 전나무길로 들어서겠지

아차, 길 잘못 든 나그네처럼 기웃거리며

절 앞마당 가로질러

작은 손 말아 쥔 당단풍나무를 건드려 보다가

뒷산 봉우리로 가뭇없이 사라지겠지

 

꿈속 같은 세상살이야

이제 웬만큼 비벼대며 살아봤으니

더 뭘 바랄 게 있겠나

앞으로 남은 세월의 푸른 살결도

흐르는 구름처럼 저절로 아름다워지느니

 

어제 절 마당을 쓸다간 바람처럼

그동안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

하나둘 따듯한 입김을 불어 넣듯 불러들여

빗국화꽃살문이나 빗모란연꽃살문

솟을 금강저꽃살문에 서로 깍지 끼워보며

사방연속무늬를 짜보고 싶다.

 

해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꼭 껴안다 보면

어느새 한 천 년쯤 훌쩍 흘러

우리 늘 여닫는 환의 꽃살문에도

저처럼 은은한 미소가 배어나지 않겠는가.

 

작가 소개 / 이상인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 광양중마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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