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꽃살문
이상인
이번 겨울 한 철에는
내소사 꽃살문에서 나고 싶다.
솟을 모란꽃살문 띠살문에 끼어들어
대웅보전 문틈에 꼼지락거리는
맑고 가벼워진 햇살이나 세어보며.
몇 편의 눈보라를 이끌고
멀대같이 서 있는 전나무길로 들어서겠지
아차, 길 잘못 든 나그네처럼 기웃거리며
절 앞마당 가로질러
작은 손 말아 쥔 당단풍나무를 건드려 보다가
뒷산 봉우리로 가뭇없이 사라지겠지
꿈속 같은 세상살이야
이제 웬만큼 비벼대며 살아봤으니
더 뭘 바랄 게 있겠나
앞으로 남은 세월의 푸른 살결도
흐르는 구름처럼 저절로 아름다워지느니
어제 절 마당을 쓸다간 바람처럼
그동안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
하나둘 따듯한 입김을 불어 넣듯 불러들여
빗국화꽃살문이나 빗모란연꽃살문
솟을 금강저꽃살문에 서로 깍지 끼워보며
사방연속무늬를 짜보고 싶다.
해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꼭 껴안다 보면
어느새 한 천 년쯤 훌쩍 흘러
우리 늘 여닫는 환幻의 꽃살문에도
저처럼 은은한 미소가 배어나지 않겠는가.
작가 소개 / 이상인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 광양중마초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