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이상인
태어나면서부터 연한 혓바닥으로
세상의 밑바닥을 쓸고 닦았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태초부터 이어져 온
깊은 전언의 상형문자를
온몸으로 써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처음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우리는
그 문자의 뜻을 까먹었거나
오랜 기억에서 스스로 지워버려서
바르게 읽고 해석할 수가 없다.
너와 나 사이
빼곡하게 채워진 호흡 같은 의미들
바람처럼 일깨워주듯이
우리는 일평생
자신의 맨 밑바닥을 쓸고 닦는
달팽이 하나씩 데리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