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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만큼 공부다

작가 유시민이 말하는 글쓰기와 공부

  • 입력 2020.07.06 08:22
  • 수정 2020.07.06 10:48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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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필법/유시민 지음/창비/9,000원
공감필법/유시민 지음/창비/9,000원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니체

공부란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 이며 글쓰기는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 -17쪽

글쓰기는 공부한 것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

언제부터였을까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글자를 처음 배웠던 어린 날부터 시작된 갈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시절, 글자도 모르는 새어머니에게 내가 쓴 일기장을 들키지 않으려고 장롱 밑에 숨기던 버릇이 생겼던 그 때 부터였을 거라고.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나는 동네 어른들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자식을 보낸 동네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 주곤 했습니다.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나는 동네 어른들이 말로 불러주던 문장을 받아쓰던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집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글자를 모르던 어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글로 써 드리고 칭찬을 받으며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그리워하는 어버이의 간절한 마음이 내가 쓰는 글자 속에 담겨져서 전해진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활자에 중독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동네 언니 집에서 만화책을 몰래 보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만화책은 나쁘니까 보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만화책을 볼 때마다 죄송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소녀의 꿈은 보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보는 것이었습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가난도 외로움도 슬픔도 다 잊을 정도로 책 속의 주인공과 한 마음이 되어 울고 웃었던 유년의 기억은 나를 평생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보다 책 읽기가 더 즐거웠습니다.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도 책은 해결해주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세상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내 아픔도 조금씩 나아짐을 느끼곤 했습니다. 울면서 글을 쓰고 나면 답답한 가슴이 풀렸고 다시금 용기를 내어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걸 체감하면서 나는 더욱 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서 글이 저절로 잘 써지거나 문장이 술술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몇 년씩 펜을 놓고 좌절하며 나의 얄팍한 문장력에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그럴 땐 그저 책만 읽으며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마치 옹달샘에 샘물이 고이듯, 수액을 빨아들인 나무들이 물기를 내놓듯 어느 사이엔가 나의 글 샘에 글자들이 내려앉기 시작한 것은 중년을 넘기던 어느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좌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 아픔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낼 길이 없음을 깨닫던 순간에 종이와 연필은 가장 좋은 벗이 되어 내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픔과 상처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대신 피눈물을 뚝뚝 받아주었습니다.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써야만 살고 싶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은 나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세상에 내놓으며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발가벗겨내는 글을 쓸 수 있냐고. 부끄럽지 않느냐고. 당신만 선생이냐고, 당신만 고생하는 것 같냐고.
 
우리 삶에는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다. -29쪽

그렇게 내 인생의 체험을 수기로 내놓으며 나는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내 아픔을 보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내 어설픈 글이 용기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글쓰기는 살아 숨 쉬는 허파이자 숨구멍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날은 글을 쓰는 날입니다.
글쓰기는 인간의 잠재력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실을 수 있는 활자야말로 인간의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내게 사는 이유와 명분을 주었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길잡이입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공분을 느끼는 능력은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더군요. 사회적 공분을 느끼는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본성에 속한다니 반갑지 않습니까? 역시 공부는 좋은 것입니다. -56쪽
 

글을 쓰는 사람은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일 겁니다. 저 또한 글을 통해 분노를 표현하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글쓰기는 사회 참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높일 자신은 없지만 내 생각을 표현한 글로 세상의 밭이랑에 작은 씨앗 하나라도 뿌릴 수 있다면, 그 씨앗이 열 배 백 배, 천 배로 돌아오는 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글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를 알아야 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문장 공부를 하는 분들이 흔히 있는데,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빈약하면 아무리 문장 공부를 해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을 늘리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에요. 아무리 멋진 조감도와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쓸 수 없어요.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어휘를 늘리라고 권하는 겁니다. -81쪽
 
저는 정치가 유시민도 좋아하지만 작가 유시민은 더 좋습니다. 그의 책들은 깔끔하고 솔직하며 멋을 부리지 않고 담백해서 좋습니다. 크게 어려운 낱말로, 현학적인 수사로 사람을 기죽이지 않는 그의 인품이 글 속에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글과 삶이 같은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쓰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간절함과 절박함, 쓰지 않으면 병이 나서 죽을 것만 같은 절절함이 글 속에 묻어나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가 쓴 책들은 거의 읽었고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청춘의 독서>는 아직도 가끔 들여다 볼 만큼 좋아합니다. 그의 해박함이 부러운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위의 글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삶의 중요성을 은근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휘력이 부족할 정도로 빈곤한 글 샘을 채우는 데는 독서가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는 이 나라를 말없이 질타합니다. 종이만 축내는 글이라면 나무 값도 못하는 글이라면 함부로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조용히 나무랍니다.
 
이 책을 덮으며 나의 글쓰기를 돌아봅니다. 참신한 어휘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글인지, 생각의 거름망은 촘촘한지, 관습적으로 써내는 글은 아닌지, 울분도 공분도, 공감도 느낄 수 없는 글은 아닌지, 그저 보도자료 수준의 글을 여기저기서 따다가 글의 가짓수만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작가 유시민의 첨삭을 받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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