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병아리 섬마을 선생님, 이곳에도 모든 것이 꽃피고 있다

  • 입력 2020.06.12 11:37
  • 수정 2020.06.12 13:40
  • 기자명 홍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아리 섬마을 선생님, 이곳에도 모든 것이 꽃피고 있다

 

오늘도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이불 속을 헤치고 일어난다. 코에 스치는 바다 내음도 어느덧 익숙해진 탓일까, 짠 내음인지 꽃향기인지 알 수가 없다. 머리를 훌훌 말리고 나가니,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재잘대고 있다. 학교의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된다.

60여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우리 학교는 완도읍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세 다리를 건너야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름 다리로 연결되어 그나마 배로 들어가야 하는 섬보다는 환경이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시험에 갓 붙은 신규교사는 발령 임지를 확인하며 연신 한숨을 쉬기에 바빴다. 필자는 살면서 바다를 본 적이 손에 꼽히는, 그야말로 육지 사람인데, 본가마저도 전남이 아닌 전라북도 전주시이다. 학교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장장 다섯 시간을 걸려 버스를 타고 오며 머릿속으로 이미자 씨의 섬마을 선생님을 아마 스무 번은 넘게 재생했으리라. ‘섬마을 선생님의 가사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엇 하러 왔는가 서엄-마을 선생님속으로 받아치길 무엇 하러 왔겠는가, 발령받았으니 왔지!”

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것, 오지에 발령받아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청춘의 병아리 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곤 한다. 특히나 섬 지역 학교가 전국 최다로 꼽힌다는 우리 전라남도 신규 교사들은, 임용 직전 연수에 모여 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누구나 토로한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도시에서의 생활을 던지고 보다 문화 기반이 빈약한 곳에 들어가 문화적 생소함을 견디며 외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시작되는 것이리라. 여교사들의 경우 특히나 인적 드문 곳에서 지낸다는 것 그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기도 하므로 그 두려움이 가중된다.

필자의 제자들은 이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손사래를 치며 코웃음을 보낸다. 학교에 일찍 오고 싶어 일요일 아침부터 출발하는 선생님이 그런 시기도 있었냐고 웃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제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의미 없는 발걸음이 북적이는 그곳보다 작은 일에도 큰 웃음 짓고 모든 것에 진심이 담긴 이곳에 익숙해져 버렸다. 도시 생활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에게 섬마을에서 나오고 싶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 단호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

섬마을에는 정이 가득하다. 특히 소규모 학교에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만나 살아가기에 교사들끼리의 정도, 사제간의 정도 상당히 두텁다. 삭막한 개인주의에 물들어 기계의 부품처럼 돌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를 보듬고 돌보는, 빵 한 조각을 먹더라도 누구 한 명이라도 덜 먹었는지 꼭 살펴주는 동료간의 정. 선생님 표정이 어두운 날에는 , 누가 기분 상하게 했어요! 혼내줄게요!” 라며 손을 꼭 잡아주는 사제 간의 정. 특히나 선생님과 어른들을 대하는 눈빛에서 가감 없는 솔직함과 꾸밈없는 마음들이 느껴질 때면,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2019년 여름, 약산고등학교 텃밭 가꾸기 동아리 부원들이 수확한 쌈채소들로 잔치를 벌이고 있다.
2019년 여름, 약산고등학교 텃밭 가꾸기 동아리 담당교사(송찬호)와 부원들이 수확한 쌈채소들로 잔치를 벌이고 있다.

섬 학교는 오히려 더 안전하기도 하다. 전 교사가 관사에 거주하며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또한 바로 옆 관사에 계시니 무슨 일이 일어날 염려도 없거니와, 작은 벌레 한 마리에 소리를 질러도 모두가 뛰쳐나와 도와주니 이렇게 안전할 수가 있을까. 도시 학교에 재직하며 서로가 멀찍이 떨어져 여교사 홀로 원룸에 살았다면, 밤에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을까 싶다.

이외에도, 의미 없는 유흥에 돈을 쓰지 않아 정신 건강과 주머니가 모두 풍족(?)해 지는가 하면, 교사 수가 적고 동교과 선생님이 적은 탓(혹은 덕분)에 교과 교육과정의 자율 운영, 다양한 방법으로 과정 중심 평가 등 교사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도 하고, 도시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싱싱한 회와 바다 요리들을 마음껏 맛볼 수도 있다.

이래저래 자랑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내가 큰 행복과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느낀 점은 따로 있다. 학원에 갈 여력도, 과외를 받을 여건도 거의 전혀 없다시피 한 이곳에서 아이들은 전적으로 공교육을 믿고 선생님을 존경하며 학교 교육에 매진한다. 학부모님들 역시,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사의 지도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다. 어떤 이들은 교육 여건이 열악해 학업에의 관심도 낮고 교사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느냐라고 묻기도 하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 내 아이들이 도시의 풍족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라는 자부심과 내 교과에 대한 책임감으로 도시 아이들 못지 않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의미 없는 유흥으로 날려버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수업을 준비하고, 한 자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연구하며 전공 서적을 들추는 내 모습에 교사 효능감도, 아이들의 학습 흥미도 쑥쑥 올라간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교사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알아주기에, 또 그만큼 더욱 잘 따라주게 되므로 일석이조 아닌가.

나는 요즘도 섬마을 선생님노래를 부르며 일어나곤 한다. 흥겨운 멜로디와 장단을 벗삼아 피곤하고 고된 아침잠 속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 등교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잠을 깨운다.

섬마을 선생님의 가사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엇 하러 왔는가 서엄-마을 선생님무엇 하러 왔겠는가, 난 아이들을 보러 이곳에 왔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