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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자벌레 / 이상인

  • 입력 2020.06.09 14:44
  • 수정 2020.11.13 15:32
  • 기자명 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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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

이상인


산행 중에 자벌레 한 마리 바지에 붙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는 연초록 자
자꾸 내 키를 재보며 올라오는데
가끔 고갤 좌우로 흔든다.
그는 지금 내 세월의 깊이를 재고 있거나
다 드러난 오장육부를 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끈질기게 자라나는 사랑이나 욕망의 끝자락까지
또 고갤 몇 번 흔들더니 황급히 돌아내려 간다.
나는 아직 잴만 한 물건이 못 된다는 듯이
잰 치수마저 말끔히 지워가며

이상인 약력
-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 시집 『해변주점』『연둣빛 치어들』『UFO 소나무』『툭, 건드려주었다』『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 광양중마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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