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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맛으로 만난 산책길

행복한 남산길 산책

  • 입력 2020.07.03 09:06
  • 수정 2020.07.03 10:11
  • 기자명 김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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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맛으로 만난 산책길 / 김현옥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교 뒷산 남산공원으로 향한다. 6월 초 버찌가 까맣게 탱글탱글 익어가고 있다. 남산공원 산책을 즐기는 것은 눈과 귀, 입이 호강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벚나무들이 서너 그루 서 있다. 가장 먼저 버찌가 열린다. 다른 나무들이 빨갛게 달구어져 있을 때 이 나무는 벌써 까맣게 영글어 조금만 나무를 흔들어도 농익어 떨어진다. 나무 아래에는 버찌알들이 떨어져 까맣게 터진 자국들로 얼룩져 있다. 이 열매들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크고 달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버찌 서너 알은 따서 입에 넣고 간다. 버찌물이 흘러 손바닥을 적신다. 선명한 핏물이 묻은 듯하다. 그래서 화장지를 서너 장 들고 가서 손바닦을 닦는데, 금방 진달래꽃빛으로 물든다.

남산 공원으로 들어선다. 이곳 벚나무들은 키가 커서 손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상상을 한다. 키가 쭉 위로 잠시 늘어나서 눈 아래로 나무를 보며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기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열매를 따 먹는 새들을 잠시 부러워한다.

저 건너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운다. 그러자 바로 내 앞쪽 나무에서도 뻐꾸기가 화답하듯 운다. 약간 더 크고 강한 울림이다. 나무 어디쯤에 새가 숨어 있나 보려고 살펴보니, 바로 앞에서 등산객인 듯, 일꾼인 듯 두 사람이 정차된 트럭 뒤에서 앉아서 쉬고 있다. 그런데 뻐꾸기 소리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내고 있다.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뻐꾸기 소리를 흉내내고 있다. 깜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나도 어이없어 웃는다. 정말로 뻐꾸기 소리인 줄 알았다. 저 소리 듣고 뻐꾸기가 날아올 것만 같다. 인간 뻐꾸기이다.

 

남산공원 장미길

공원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우거진 나무들이 많이 모여 있어, 6월이 되자 제법 그늘이 짙어졌다. 푸른색이 짙어지고 있다. 산수유 나무가 많은데, 푸른열매들이 댕글댕글 달려 날마다 조금씩 알이 커지고 있다. 감나무 아래에는 누가 흔들었는지 감꼭지 채 감똥 여러 개가 우수수 떨어져 있다. 허리가 매끄러운 백일홍은 제일 늦게까지 봄을 타지 않는 듯 잎을 내지 않더니 어느 순간에 푸른 잎이 무성하다. 이 나무에 붉은 꽃이 피면 벌써 여름이구나하고 깨닫는다. 공작단풍나무, 푸른 단풍나무, 붉은잎 단풍나무 크기도 색깔도 다른 단풍나무들이 날개달린 어린 씨앗을 매달고 여기저기 서 있다. 잎이 커다란 마로니에 나무 아래를 지나면서, 작년 가을에 떨어진 마로니에 열매를 생각한다.

여기저기에서 새들이 저희끼리 장난치며 떠들고 있다. 쉬는 시간 교실 풍경 같다. 새들 소리에 잠시 과거로 갔던 생각이 금방 현재에 머문다. 이 공원에는 어치와 직박구리가 많다. 어치는 모습은 예쁜데 소리는 별로다. 까만 머리, 회색 몸통에 파르스름한 날개깃과 긴 꽁지깃을 가지고 있다. 하늘을 날 때는 날개를 힘차게 양쪽으로 펄럭인다. 땅에 내려오면 깡충깡충 뛰면서 걷는다. 소리 지를 때는 목쉰 소리로 꽥애액~ 꽥꽥꽥한다. 직박구리는 참새와 비슷하게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참새인 줄 알았다. 함께 산책했던 선생님이 알려줬다. 저것은 직박구리 소리라고. 주의깊게 들어보니 참새 소리와 다르다. 참새는 짧고 부드럽게 짹 짹 짹하는데, 직박구리는 삐잇 삐잇하면서 좀 더 가늘고 날카롭다. 모습은 참새와 비슷한 갈색인데, 더욱 검은색에 가깝고 몸은 가늘고 날렵하다. 이들 소리에 섞여 가끔 뻐꾸기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꿩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오른쪽 공원을 다 돌고 나오면 벚나무들이 또 대여섯 그루 서 있다. 열매들이 제법 굵다. 맛을 보니 신맛이 강하다. 좀 더 옆으로 이동하면 열매는 잘고 맛은 쓴맛이 강한 벚나무가 있다. 한두 알씩 시식하듯 빨아먹고 씨는 꼭 흙이 있는 곳으로 던져둔다. 다시 나무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면서.

방향을 바꿔 천변이 있는 아래쪽으로 향한다. 이곳은 느티나무, 멀구슬나무, 편백나무, 벚나무, 감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져서 길바닥에 이끼가 파랗게 자랄 정도이다. 길을 따라 나려가다 또 버찌 열매를 입에 넣는다. 이곳 열매도 쓴맛이 강하다.

천변을 잠시 살펴본다. 물이 흐르고 있는 하천에 다양한 풀들이 자라고 있다. 미나리잎이 보이지만 외면을 한다. 발을 물에 적시고 싶지 않아서이다. 조금 더 위로 가면 나주터미널이 있고, 그 옆에는 노랑머리연꽃이 한창 작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천변 위쪽에도 불미나리가 많이 자라고 있지만, 찻길 옆이라 외면을 한다.

길을 꺾어 다시 공원쪽으로 오른다. 위에는 현충탑이 보이는데, 그 아래 감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가늘고 키가 크다. 감꽃도 아주 작다. 아마도 나무들 그늘 때문에 저렇게 키가 커지지 않았나 싶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감똥도 아주 작더니, 며칠 전에는 바닥에 감꼭지 채 감꽃이 소르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영양이 불충분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감꽃을 주워 냄새를 맡아본다. 달짝지근하면서 생것의 비린 맛과 여린 찔레 순맛이 난다. 작은 종처럼 생긴 그 여린 꽃을 밟고 지나가기가 아까워 빈 공간을 찾아 신발을 딛는다.

나무통나무를 가로로 눕혀 만든 계단을 오르면 현충탑 앞이다. 이곳에도 벚나무들이 많은데 워낙 키가 커서 버찌 따먹을 생각을 못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아랫가지 한 개가 밑으로 처져 있다. 까맣게 버찌가 달려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두 개 맛을 보니 달다. 학교 버찌보다 더 맛있다. 알도 굵고. 이곳 벚나무가 최상품이구나. 그 옆에 있는 나무 버찌도 맛보니 역시 맛이 좋다. 현충탑 앞이어서 나무도 열매에 정성을 들이나 보다.

나주천 노랑머리연꽃군락

현충탑을 지나 오른쪽으로 시멘트 계단이 있다. 그 계단으로는 별로 올라가고 싶지 않다. 더 오른쪽으로 나 있는 샛길로 들어선다.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굽어진 길 왼쪽에는 우람한 붉은 기둥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오른쪽으로는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다. 잔바람만 불어도 솨아솨아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길이 휘어져 있어 조금만 들어서면 마치 깊은 산속으로 들어온 듯하게 아늑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는 차나무도 네 그루나 자라고 있다. 봄에 찻잎을 몇 번 땄기 때문에 이 앞을 지나갈 때는 일부러 차나무를 바라보지 않는다. 차나무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차나무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려워 몸을 떨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늘 푸른 잎들을 달고 있으니 다행이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 들어서면 어치 두 마리가 나를 따라오며 뭐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오며 떠드는 것이다. 나무와 나무를 징검다리 삼아 날아와 앉으며 짖어댄다. 처음에는 나를 안 체 하느라고 반갑다고 짖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함께 산책한 선생님이 말한다. “아마도 근처에 새끼가 부화했나 봐요. 새끼를 보호하려고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저러는 거에요.”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치를 바라본다. 긴 꽁지깃을 까딱까딱 까불거리며 입을 크게 벌려 울어댄다. 목이 쉰 듯 거친 소리여도, 나를 경계하여 짖는 소리여도 나는 좋다. 그래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어치가 반갑기만 하다.

 끝에는 다시 도로와 만나는 계단이 서너 개 있다. 그 위로 올라오면 줄장미가 심어진 길이 나온다. 6월이라 장미꽃이 온통 붉게 철망 가로대에 기대어 피어 있다. 해당화처럼 벌어진 장미꽃이다. 코를 가까이 대도 별로 향기가 나지 않는다. 딱딱 다문 배추처럼 오무린 장미, 그것도 검붉은 장미꽃을 좋아한다. 그 장미꽃은 나주중 화단에 피어있다. 이곳 줄장미 장미담장에 노란 장미꽃이 숨어있듯 피어있는 곳이 있다. 신기해서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다.

장미길이 끝나면 남산공원 초입에 서 있는 시민회관이 다시 나온다. 그 아래로 쭉 내려오면 왼쪽이 나주중이다. 벌써 점심 시간이 끝나간다. 햇살 따가운 초여름, 더운 줄도 모르고 혼자서 맛집 여행을 하듯 버찌 시식을 하면서 남산 공원 산책을 하였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하는 동안, 아침부터 오후 퇴근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그러면 눈도 허리도 아프다. 가장 아픈 곳은 오른쪽 손목이다. 계속 서너 시간씩 자판을 두들기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다 보면 어깨죽지와 뒷목까지 아프다. 점심시간만 이렇게 휴식겸 산책을 한다. 눈도 쉬고 마음도 쉬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버찌맛도 비교하며 맛보고, 새들의 공연소리도 듣고, 꽃들의 향기도 맡는다. 오감이 충만해지는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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