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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픈 아이 마음을 읽어주세요

아픔을 명화로 탄생시킨 화가 이야기

  • 입력 2020.04.10 15:14
  • 수정 2020.04.10 15:18
  • 기자명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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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미술관/김소울 지음/일리/17,000원
▲ 치유미술관/김소울 지음/일리/17,000원

 

그림은 힘이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작가 서문에서

<치유미술관>은 가상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를 묶은 형식으로 전개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화가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15명으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을 받았던 화가들이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읽기 쉽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으면서도 화가들이 겪은 아픔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이 그림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림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며 울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장면들이, 때로는 내 아픔 같기도 하고 쓰다듬고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하는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그림, 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의 시작은 아픔과 상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글이나 그림에 덜 매달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듯, 상처가 깊은 사람이 치유의 방법으로 그림이나 글쓰기, 음악으로 힐링하는 일은 당연하다. 오히려 꽁꽁 감추거나 피하려다 잘못 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하면 예술 작품을 오로지 미적 만족만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 그림이, 그 노래가, 그 글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직면한 내면까지 살펴볼 수 있다면 최상의 독자가 되고도 남으리라.

그림 속에 드러난 아픈 아이 마음 읽어주세요

요즘은 학교 현장에서도 상담기법으로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기법이 많이 활용되어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이 그린 그림으로 학부모 상담을 실시하여 좋은 효과를 보며 폭력적인 성향을 인지하고 사전 예방 교육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 학생은 손과 발이 없는 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곤 했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친구들에게 투사하며 건드리거나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학부모와 심층 상담을 거쳐 아버지의 폭력을 줄이는 계기가 되어 밝아진 모습으로 진급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가 더 크다는 데 교육의 어려움이 산재한다.

때로는 입학식 첫날 그린 그림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학부모 상담을 실시한 경우도 있었다. 부모는 모르는 아이의 상처 받은 내면세계를 설명해주니 깜짝 놀라던 그 학부모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마다 고운 옷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잘 차려 입히고 잘 먹이던 이면에는 고통 받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에게 투사하여 대리만족하듯 공부로 내모는 모습을 교정하는데 여러 달이 걸렸었다.

자식이 남들보다 특별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은 탈이 나기 마련이다. 가족의 얼굴 표정이 없거나 손발이 없거나 매우 작게 그리거나 어두운 색으로 떡칠해버리는 모습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지속적인 상담과 미술 치료법을 병행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반대로 매우 정형화된, 정돈된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아픈 내면을 드러낸다. 그런 아이들은 학습력도 뛰어나고 매사에 빈틈없고 적극적이다. 다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다소 차갑거나 매몰찬 성향을 읽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어렸을 때 접근하는 게 좋다. 일찍부터 성취가 아닌 성공에 길들여지거나 지나치게 물질에 밝은 성향까지 보여준다. 이는 모두 학부모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 부모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모가 은연중에 학생 앞에서 성공을 습관적으로 말하거나 모든 것의 가치를 돈에 두는 발언을 습관적으로 한 게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학생에게는 뭐든 1등을 해야 하고 돈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서 어린 아이답지 않음에 놀라 따뜻한 동화를 자주 읽어주었다. 집에서는 반려동물을 기르도록 부모에게 부탁했는데 받아들여서 키우고 있다는 사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마음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최상의 도구였다. 수행평가의 도구를 넘어서, 그림대회 상을 받기 위한 그림을 넘어서는 마음을 치유하는 미술 시간은 많을수록 좋다.

글이나 그림은 바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한 시작이 '글'이요, '그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발음조차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움. 글, 그림! 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간절함, 그리거나 쓰지 않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거나,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꼭꼭 숨기고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레니의 작품을 모사한 <베아트리체 첸치 1662년>를 배경지식 없이 그림으로만 보았을 때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 작품을 접할 수 없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림이지만, 몽환적이고 사실적인 빼어난 묘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글을 읽고 자세히 보고 처절한 아픔으로 피 흘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시라니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으로 시라니가 그린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라니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시라니는 <베아트리체 첸치 1662년>를 그리며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여 원작보다 더 애잔하게 그려서 유명해졌다고.

열일곱 살 시라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그림으로라도 표출하지 못했다면, 그 아픔은 자신의 내면을 공경하는 극심한 우울증이나 조현병, 공황장애에 시달렸거나 다른 사람에게 투사시켜 분노조절장애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거리는 추측을 해본다. 다행히 상처 받은 자신의 아픔을 처절하게 표현하며 피 흘리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리며 치유 받았으리라.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양산을 든 여인>1875, 모네의 그림은 매우 아름답고 몽환적인 그림이다. 모네가 사랑한 첫사랑 카미유의 그림이라서 그런지 얼굴 표정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반면에 카미유를 잃고 두 번째 맞이한 아내 수잔을 그린 비슷한 그림인 <야외 스케치>에는 수잔의 얼굴 윤곽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카미유를 잊지 못한 상처 때문에 수잔의 얼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는 침묵을

학교에서도 종종 가족을 그리게 하면 얼굴 윤곽만 그리거나 어둡게 칠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분명히 아픈 상처를 자기도 모르게 드러낸 것이므로 면밀하게 관찰하고 상담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술치료는 이제 상담기법의 필수 항목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표현되지 않은, 감춰진 무의식에 가라앉은 마음의 상처까지 볼 수 있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는 일은 이제 선생님에게도 꼭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아픈 아이들이 넘치므로.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 전부여서 학창 시절이 거의 없는 나는 그림을 그려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림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고학년을 많이 가르쳤기에 수채화 그림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기법을 배워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는 아이들의 그림을 제대로 보는 심미안이 없이 그림 대회에 나가서 높은 등급의 상을 받게 하는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 반 전체 30여 명의 학생들이 거의 모두 최우수상부터 장려상을 휩쓸어 교실 뒷면 빼곡히 상장을 전시한 적도 있었다. 내면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충실한 보고 그리기 기법을 지도한 뒤늦은 부끄러움을 이 책을 보는 동안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최고상을 수상한 제자는 화가의 길로 갔고 디자인을 전공하는 제자도 있으니 내 진심에는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자유인이 된 지금 새롭게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림을 배우는 것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의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나의 상처와 아픔을 햇볕에 말려주는 일을 그림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에도 습관적으로 그림 에세이를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간접 경험으로라도 그림에 대한 배고픔을 해소하고 싶은 본능적인, 때로는 의식적으로 찾는다.

이 책은 작가가 화가들을 직접 상담하며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변해가는 그림과 함께 실어서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없거나 그림에 문외한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매우 접근성이 뛰어난 책이다. 아니, 정신과 상담과 미술치료 기법을 혼합하여 아픔이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분석하고 깊이 파고든, 저자의 전문성으로 친절하고 일반적인 언어로 서술해서 더 좋은 책이다. 이 책 덕분에 화가의 일생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침묵할 일이다. 그것이 그림이든, 사진이든, 한 편의 시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일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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