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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수북'을 계속 하는 진짜 이유

  • 입력 2021.11.19 16:01
  • 수정 2021.11.24 14:22
  • 기자명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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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7시가 다 되어야 날이 밝는다. 아침마다 안개도 가득이다. 그래도, 수요일이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 수요일은 ‘수북수북’ 하는 날이니까. ‘수북수북’은 수요일 아침 8시 40분 쯤 교실로 들어가 십여 분 가량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 이름이다.

수북수북 활동에는 면 단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책을 읽어주러 오시는 지역민.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책을 읽어주고 출근하는 학부모. 아이들이 ‘할미샘’이라고 부르는 할머니 두 분도 계신다. 젊은(?) 나도 수요일이면 긴장하는데, 이분들은 오히려 더 일찍 나오신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수고로운 일을 무급봉사로 해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해마다 멤버는 바뀌어도, 수북수북은 벌써 올해 3년째이다. 올해는 좀 일찍 마감하자고 할까 고민하며 학교에 도착했다. 

활짝 열린 교육복지실. 건이 할머니가 1학년 교실로 가시고, 교감선생님이 그림책을 고르고 있다. 함께 그림책을 고르고 교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4학년 교실이다. 그동안 75세 최자희 ‘할미샘’이 들어갔던 반이다. “오늘은 할미샘이 서울 가셔서 대신 들어왔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반겨준다. 

오늘은 안 에르보의 [산아래 작은마을]이에요. 그림을 보여주며 ‘옛날, 옛적~’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읽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아이들이 앉은걸음으로 앞으로 뽀짝뽀짝 걸어나오더니 통로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 문장을 읽던 나는 갑자기 뭉클, 힘이 났다. 관객의 응답에 울고 웃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금세, 9시가 가까워왔다. 읽기를 멈춰야 했다. “다음 주에 계속!” 그러자 애들이 한마디 씩 한다. “뭐야, 이거 드라마야?” “왜 꼭 궁금한데서 끊냐고!” 나름 열성 팬같다. “진짜 궁금하면 복지실로 와보시든지!” 하하하 웃으며 교실을 나오는데 발걸음이 날아갈 것같다. 아까까진 어떡하면 빨리 종료할까를 고민했는데, 막상 하고 나면 왜 이리 기쁜 거야! 

복지실로 돌아왔더니, 마트에 근무하는 지현이엄마가 다음주 읽어줄 책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방금 내가 느꼈던 마음이랑 똑같은 말을 한다.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의자를 가지고 앞으로 쪼르르 와서 책에 집중을 해주거든요. 그 맛에 저는 학교에 맨날 와서 책읽어주는 거예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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