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시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60주년 환갑 잔치가 있었다. 1961년 김성복 선생 자택에서 한글을 모르는 군인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던 것으로 시작된 향토중학원이 바로 현재의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이다. 배우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이들에게 설립자 사비로 시작된 배움터가 60년 이어지는 동안 1만7천 여 명의 동문을 배출하기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만 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지난해 공익재단법인 향토로 설립자 명의 변경까지 완료하고 명실공히 평생교육시설 학력인정 초·중·고등학교로서 든든히 서가고 있다.
내 길
양해심(58세, 중1)
간의 무게를 배운 날
서울서 유명한 대학교를 나온 동생한테 아르켜줬다.
나는 이제 간의 무게가 몇g인지 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배운 날
유치원 선생 하는 딸한테 갈켜줬다.
나는 삼국시대도 안다.
치매 걸린 엄마가 밤새 온 방을 헤집고
내 눈도 마음도 헤집고
수술한 다리가 뒤틀려서
오메, 죽것네! 소리가 절로 나와도
적은 글씨가 안 보여
오만 인상을 다 쓰며 책을 보아도
중학생이 된 내가 참말로 멋지네.
영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공부 못 시켜
미안해하는 울 엄마에게 말해야지!
엄마 둘째 딸
이제사 내 길을 가고 있다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길을 이제라도 가고 있다고.
오늘도 택시타고
제일정보중고등학교 뒤뚱거리며 간다고.
『내 길』을 쓴 양해심 씨는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초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목포제일정보중고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초등학력을 취득하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른 5형제들은 공부할 수 있었지만 착하기만 했던 둘째 딸 양 씨는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4월 중순 치매 걸린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는 그 순간까지 본인 집에서 어머니를 봉양한 자식은 양 씨였다. 이로써 그의 시 『내 길』처럼 양씨는 배움의 길을 갈 모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날 김성복 설립자 겸 이사장(89세)은 “고맙고 감사하다. 60년 전 글을 몰라 어려움에 처한 군인들에게 글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오늘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회고하며 목이 메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내빈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진행된 기념식에서 목포지역 김원이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우리 둘째 누나도 이곳 향토중학원 출신이다. 완고한 아버지가 아들들은 교육시키면서 딸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시키지 않자 둘째 누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향토중학원에서 공부했고 학력인정 이전이었기에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학력을 취득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60년간 지역인재의 산실이었다.”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역할에 감사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교육60년사료집』을 발간하여 60년간 지역사회와 함께 걸어온 교육의 길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이날 국제라이온스협회 355-2B지구(총재 이철호)는 장학금 100만원(5명) 그리고 마스크 6000장을 학교에 전달했고, 재단법인 향토는 장학금 500만원(초중고생 34명)을 전달할 예정이다. 1964년 4월 28일 신문 『목포일보』에 따르면“가난 때문에 진학을 못하고 있는 불우한 아동을 위해 중학교 검정시험합격을 목표로 시내산정동거주 국민운동목포시지부 김성복 씨는 2구동에 산정향토원을 설립하고 등불이 되고 있다.” 60년 가까이 낡은 신문 속, 산정향토원이란 글자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