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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우린 삶의 주인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 입력 2021.02.16 08:55
  • 수정 2021.02.17 11:39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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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없는가? 잘 사는 것 같은데 뭔가 답답하고 삶이 그냥 그렇다.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아성찰이다.

그냥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오! 나의 삶이여, 오! 나의 자유여.
그냥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오! 나의 삶이여, 오! 나의 자유여.

자유란 별것 아니다. 자유란 가출이 아니라 출가이다. 홀가분하게 부모와 고향을 떠나 삶을 지지고 볶아보는 그런 행위일 뿐이다. 삶을 영위하는데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늘 마음도 옆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가출은 부자유한 삶이다. 어른이 되어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냥 부모 곁을 뱅뱅 도는 삶이기 때문이다. 혹여 부모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거나 간섭을 받았을 때 홧김에 떠나는 가출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결국 순간의 자유만 누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출가는 자유로운 삶이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쓴맛, 짠맛, 새콤한 맛, 달콤한 맛 등등 다양한 맛의 향연을 즐기며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여 누군가가 삶을 강요하는 눈빛을 보이면 홀가분하게 몸과 마음이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J씨와 K씨의 삶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자. J씨와 K씨 모두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릿고개를 넘어야만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모든 것은 가족중심으로 움직였으며 아버지에 의해서 삶의 방식이 결정되었다.

 

J씨는 11남매 중에 장남으로 아버지의 농사일을 이어가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하지만 농사로는 가난의 둘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여러 번의 가출 끝에 결국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외딴 두메산골을 떠났다.

서울로 향한 J씨는 막노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일을 경험하였으며, 쌀가게 점원을 거처 사장이 되어 그만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J씨는 그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자동차정비소 및 건설 등등 새로운 삶에 도전장을 내며 꿈을 확장하였다. 마침내 그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및 남매간을 모두 서울로 초빙하여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K씨는 3남매 중에 큰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삶을 강요받으며 두메산골에서 농사 기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농사일을 팽개치고 야밤에 서울로 하나 둘 떠났지만 K씨는 아버지의 울타리 안에서 육체노동을 숙명으로 받아 들였다.

K씨는 그렇게 원하지 않은 삶을 벽촌에서 살며 가난과 싸웠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온 몸을 땀으로 목욕 하며 쉼 없이 일만 해야 했다. K씨는 그런 삶만 살다보니 외국은 물론이고 서울 또한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의 그림자로만 살다가 결국 삶을 마감하였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뭔가 답답한가? 삶의 주인이 아니며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심증(心證)이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뭔가 답답한가? 삶의 주인이 아니며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심증(心證)이다.

여기서 J씨의 삶은 성공하였고 K씨의 삶은 실패하였다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의 삶은 다 가치가 있으며 존중받아야함에는 분명하다. 다만 누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을 뿐이다.

현애철수(懸崖撤手)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고승이 수도승에게 주로 사용하는 말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말 절벽에서 손을 놓으란 말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달린 절벽은 바로 매순간의 삶을 비유한다. 사실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이다. 다만 놓으면 죽을 것 같다고 믿는 집착의 대상일 뿐이다.

J씨와 K씨는 모두 매달린 절벽에서 삶을 출발하였다. 하지만 J씨는 절벽에서 손을 놓아 서울이라는 또 다른 절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K씨는 절벽에서 손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벽촌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삶의 주인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나는 삶의 주인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분명 절벽에서 손을 놓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왜 우린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만 할까? 바로 삶에서 자유와 주인이라는 소중한 단어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래야만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삶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혹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잘 사는 것 같은데 뭔가 답답한가? 삶의 주인이 아니며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심증(心證)이다. 그냥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오! 나의 삶이여, 오! 나의 자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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