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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유(無思惟)를 조장(助長)하는 교육의 현주소

누가 아이들의 생각을 죽여놓고 줏대가 없다고 야단법석인가?

  • 입력 2021.01.08 10:39
  • 수정 2021.01.08 15:44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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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K로부터 취업 상담을 청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번에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공사와 은행 그리고 대기업에 합격했는데 어느 곳을 선택하면 좋겠냐는 질문이었다.

누가 아이들의 무사유를 키웠는가?
누가 아이들의 무사유를 키웠는가?

K는 아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직장에 합격했다는 자랑도 하고 싶었겠지만, 그보다는 정말 어느 직장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K와 그의 아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할 것인지,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으로 갈 것인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해. 어차피 아들이 처음으로 경험해야 할 직업이니 그래도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지 않겠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적이고 열심히 공부한 아이라 잘 적응할 거야. 지금까지 아무 사고 없이 모든 일을 잘 해왔잖아. 축하하네라고 어쭙잖게 답을 했다.

전화를 마치고 잠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청년 취업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한국노동경제학회 노동경제논집에 실린 '첫 일자리 이탈 영향요인 분석'에 따르면 청년 취업자의 50.2%는 처음 취직한 직장을 1년 안에 그만둔다고 했다. 또한 1년 이상 2년 미만 다닌 사람은 18.9%, 2년 이상 4년 미만은 18.7%였으며, 첫 직장에서 4년 이상을 근무하는 사람은 12.2%에 불과했다는 자료였다.

어떻게 청년 취업자 10명 중 5명은 첫 직장에서 1년 안에 그만두었으며, 처음 입사한 곳에서 4년 이상 일하는 청년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혹시 시대와 교육의 불협화음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조금 전에 통화했던 K의 아들이 생각났다.

K의 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취업할 권리를 얻었는데 왜 아버지에게 선택할 직장을 물어야 했을까.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하면 될 것인데 말이다. K 아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요즘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학교생활을 하는 듯하다. 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직업에 종속된 교육을 받았기에 필연적인 결과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초등, 중등을 거치면서 다양성을 상실한 표준형 인간으로 양성되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기성세대가 K 아들의 선택결정권 부재를 사회구조나 학교 시스템의 문제에서 찾지 않고, 사회구조나 학교 시스템에 부적응하는 학생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마냥 생각 없는 청년으로 키워놓고 안정적이고 돈이 되는 직장만 들어가면 출세표를 붙어주지 않았는가. 마냥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이들을 괴물로 키워놓고 줏대가 없다고 야단법석이지 않았는가.

유현준 건축가(교수)다른 곳은 다 변화하고 있는데 학교는 40년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만큼 똑같은 것을 강요하는 곳이 있을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을 사용하여 똑같은 음식을 먹는 학교급식과 교도소 급식이 닮은 꼴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구조적인 학교문화에서는 학생들이 개성과 다양성을 체험하기 쉽지 않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정답만을 강요할 것인가? 또한 언제까지 주지 교과를 기준으로 교육내용을 획일화할 것인가? K의 아들은 줄 세우기 교육의 피해자임이 분명하다.

이젠 아이들에게참고 견뎌라는 말과현재를 참아야 미래에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말자. 지금까지 그런 주술(呪術) 같은 말이 아이들의 무사유(無思惟)의 싹을 키웠으며 비판(批判)의 힘과 개성(個性)을 잠재웠던 것이다.

우린 지금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 그들만이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시행착오의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직업과 삶에 대한 생각을 확장해야 한다. 또한 교육제도를 혁신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삶을 해석하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이 삶의 매듭을 직접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앞으로 또 다른 K의 아들이 기성세대에게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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